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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너는 아직 멀었다

그림의 가치는 무엇에 있는 걸까?

by 푸른국화

넌 잘나봤자 인간의 창조물이나 나는 신의 창조물이다.


이 거창한 이야기는 어쩌면 마지막 발악일지 모른다. 이 말은 DSLR의 기술과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때 비전문가들이 하던 말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눈에 담은 것처럼 담아내지 못한다. 그만큼 카메라 렌즈는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눈을 능가하지 못한다. 결국 렌즈는 사람이 만든거잖아. 신의 창조물을 넘어서기는 어렵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의 창조물보다는 자연의 창조물이 역시 위대하다.

뭘 몰라서 한 말인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창조물인 AI는 아직은 신의 창조물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뭘 몰라서인지는 몰라도. 물론 특정 부분 혹은 일부 사람보다 나은 어떤 능력을 가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종합적으로는.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AI를 이겨먹고 싶은가, 어째서 AI랑 이렇게 경쟁을 하는 것일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가 인간보다 여러방면에서 이미 뛰어나거나 곧 뛰어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난 여전히 AI와 겨루고 있다. 아직 내가 더 낫다고 바득바득 우기며.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의력의 부분에서도 AI는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문학작품을 쓰고 작곡을 하며 그림을 그린다. 그렇지만 사실 창의력 부분에서 인간보다 AI가 훨씬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람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 자신의 틀에 갇혀 버리지만 기계는 그런 "틀"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기계는 틀에 갇히지 않고 답을 찾아내거나 주어진 명령만 수행하므로 운신의 폭이 인간보다 훨씬 넓다. 금기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창의력이야 말로 AI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 "틀"이 존재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표현해서 "틀"이라 하지만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풍"도 그 틀의 일종이다. 화풍(畫風), 서풍(書風), 시풍(詩風)의 풍 말이다. 난 이 풍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나는 비록 사람을 똑같이 그리지는 못하지만 나의 그림은 AI의 그림과 달리 나스러움이 있다. 지문처럼 그림에 내 스타일이 남는다. 물론 내가 그린 그림 몇 점만 학습시키면 AI는 내풍의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난 그것이 AI 시대의 표절이라 생각한다. AI시대에 창작물의 정의도 다시 내려야 하듯, 표절의 정의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내풍의 원조는 나다. 내 그림은 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나만의 스타일이 있고, 왜 그렸냐에 나만의 답이 있다.


나의 그림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덜 닮았다. 애정을 담았으니까. 그래서 미화한다. 내 눈엔 그렇게 보이니까. AI는 얄짤없다. 참 밉게도 사람이 대체로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AI는 극대화한다. 주름이나 불균형한 모습들 말이다. 그렇게 극대화해서 안 닮았다. 안 닮긴 마찬가지인데 나는 미화를 해서 안 닮았고 AI는 폭삭 늙혀버려서 안 닮아 있다. AI의 인물화는 실제 대상보다 훨씬 늙어 있다. 심지어 다수의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거기서 제일 나이 든 사람의 연령대에 다른 사람도 다 맞춰 버린다.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다정한 포즈로 추정컨데 비슷한 연령대로 보여서 연령대를 높여서 통일시켰다고 한다. 아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 얄미운 녀석이다.


그래서 단계적으로 알려줬다. 인물화를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이건 첫 번째 레슨. 이목구비의 위치를 맞게 잡을 것. 눈과 눈 사이의 거리, 입술과 콧등과의 거리, 입 끝이 눈의 어디쯤인지 등등.

이건 두 번째 레슨. 이목구비의 크기 비율을 실제 인물과 잘 맞출 것.

이건 세 번째 레슨. 대칭 잘 맞출 것. 실제는 조금씩 비대칭이더라도 대칭이 맞을수록 미인미남형이니, 미화를 위해서 대칭을 맞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령대는 내가 설정해 주겠다.


그렇게 가르쳤더니 봐 줄만 하게 그려 냈다. 처음엔 아주 가관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더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나의 스타일과 애정에 기한 미화, 그림을 그린 스토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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