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뭐 해야하나
누군가 말했다. 자본주의의 최대 단점은 돈 안 되는 재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배우는 일에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해서 뭐하냐고. 돈도 안 되는 일을 돈 쓰며 하고 있냐고.
꼭 뭐 해야하나?
내 마음이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데 왜. 다르게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다. 난 재미라는 걸 추구하다 좌절하다를 반복하는데 재미에 대한 욕망과 허기짐이 없는 점은 부럽다. 마음의 번민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몇 년 전 이제 학벌주의는 무너졌다며 학벌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던 시민단체가 스스로 해체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목적이 달성되어 스스로 해체하는 것은 조직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일이다. 특히 그 목적인 학벌 제일주의가 무너진 것은 사회적으로도 반길 일이다. 하지만 학벌 제일주의가 무너진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큰 흐름에서 당연하게 귀결된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오직 한 가지 가치만을 추구한다. 바로 돈. 돈 말고 다른 것의 가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비단 학벌만이 아니라 외모, 인성, 지성, 명예, 신체능력 등등. 돈 버는 게 모든 것을 이겨먹는 시대다 보니 학벌도 시큰둥해져 버린 것 뿐이다. 학벌이 돈 벌어다 주던 시대는 끝났으니. 다른 병폐는 금전제일주의의 독주에 세를 잃었다. 바야흐로 독보적인 금전지향 사회가 되어서 금전 외 어떤 OO지상주의도 모두 사라지거나 약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학벌만 추구하는 사회가 돈만 추구하는 사회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다. 도찐개찐이다. 오히려 돈만 추구하는 사회가 나을 수도 있다. 적어도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고 보다 공정한 게임일 수 있으니. 문제는 "만"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한 가지 가치만을 추구한다는 것과 그 것 외에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것. 이게 문제다. 무엇을 추구하냐가 아니라, 하나만 추구한다는 것.
학벌만 추구하는 것은 문제이나 학생 신분에서 학업능력을 높이려 노력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회와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그 결과값을 학벌이라 할 수 있으므로 학업성취도 높은 사람을 동경하고 선망하며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에 박수를 보내는 정도면 사회 순기능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학벌주의가 이런 건전한 방향으로 변했으면 좋을텐데 극단적으로 무너졌다. 더이상 부를 보장해주지 않는 학벌을 외면하는 것으로.
물론 무너졌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학벌제일주의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여전히 입시가 중요하고 사교육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성적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존재하지만 우리사회는 더이상 과거의 학벌"제일"주의사회는 아니다.
학벌주의가 무너진 이 때 나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도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학벌주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학업을 하려니 자꾸 이유를 설명할 일이 생긴다.학벌주의 사회에선 공부가 부동산 투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공부하겠지 짐작하고 말지 왜 공부하냐고 묻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니 이제 와서 공부는 해서 무얼 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아니 이 사회의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대답꺼리가 없다.
지금 상황에 학위를 더한다고 연봉이 엄청 뛰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럴거 뭐하러 공부하냐고 한다. 이해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 못하겠다는 표현을 내게 꼭 하고야 말아야 겠냐고 묻고 싶다.
살수록 느끼지만 서울보다 부산이, 금전지향 가치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부산은 수도권에 비하여 문화교육 인프라도 부족하고 직업군도 한정적이다. 그리고 대대손손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아 개성이나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런 사회에서 결국 "잘 산다"는 것은 부동산 굴려서 부를 축적하는 방법 외엔 증명할 방법이 없다. 다른 무슨 방법으로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다양한 의견을 가진 서울조차도 그래서 얼마 버는데 한 마디로 다른 가치들을 흐려 버린다. 부산에선 그래서 얼마 버는데할 만한 직업군도 많이 없다. 그래서 더 나아간 한 마디. 그래서 재산이 얼만데?
재산 증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박사과정을 밟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이 동네에서 이해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동네 할 것도 없이 우리 엄마조차도 이해를 못 하신다. 왜 사서 고생이냐고. 어떤 친구도 말한다. 공부 좀 그만하라고.
글쎄. 출근하면 월급받고, 대출받아 부동산을 사고, 월급받아 대출 갚으며 사는 게 사는 거지 넌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뭘 그렇게 돈도 안 되는 걸 하고 싶어하고, 쓸데없는 데 욕심이 많냐고.
그냥.
김영하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 는 실용주의자들의 물음에 보다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 하는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함이야 말로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그냥. 재미를 위해 하는 거다. 공부가 재밌냐고? 공부가 재밌을리가. 공부는 과정이고 결과로 얻어지는, 나의 지식이 늘어나고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내가 어딘가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서 오는 만족감. 이게 재밌는거지. 그래서 재미없는 공부를 하는 것이고.
그림도 그냥. 재밌으니까. 결과물이 만족스러운면 재미는 더 크다. 선물받고 기뻐하는 지인의 모습에 도파민이 폭발한다. 간혹 예쁜 얼굴을 그리다 보면 예쁜 사람을 보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림 하나 완성하는데 적어도 두 시간, 정성 들이면 서너 시간도 걸리는데 몇 시간 동안 예쁜 사람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것 자체가 힐링일 때도 있다.
그리고 글도 마찬가지. 혹자는 이제 그만큼 썼으면 책이라도 내지 그러냐며 비웃는다. 돈도 안 되는 글을 뭐하러 쓰냐며. 책을 내는 것이 돈을 버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기쁨을 바라긴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나는 즐겁고, 읽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벅차게 행복하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진짜 작가인가 싶은데 작가님이란 호칭을 들을 수 있는 게 나는 정말 행복하고 그래서 읽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그 응원의 말씀들과 작가님 소리가 또 듣고 싶어서, 그래서 글을 쓴다.
예쁜 얼굴을 몇 시간 보고 있었더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나도 안 닮아서 아쉬움도 잠시. 초상권 논란은 없을테니 다행이라 생각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