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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생에 늦은 것은 없다

다짜고짜 화실을 찾았던 36살

by 푸른국화

난 정말 미술을 못하고 싫어하는 아이였다.


난 사실 미술을 엄청 싫어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은 학교 가기 싫을 정도로 미술을 싫어했다.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잘 하고 싶은데 못해도 너무 못하니까 싫었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엔 이론 시험 준비를 하다 화가 나서 미술책을 던진 적도 있다.

- 만점 받아서 뭐 해. 어차피 실기에서 다 까먹었는데.

2003년 학번인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땐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메겼다. "옛날사람."

실기에서 까먹은 점수로는 이론을 만점 받아도 수를 받을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해도 안 되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그 당시 정서로는 실기는 재능이고 이론은 노력이라 믿었다. 그래서 노력으로 재능을 극복할 기회조차 없는 게 억울했다. 나 같은 애들은 어쩌라고.


아무튼 학창시절엔 미술을 그렇게 증오했건만, 36살 가리늦게 스스로 화실을 찾았다. 그림을 배워보겠다고.


결정적 계기는 그 당시 그림 잘 그리는 남자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그때는 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동경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너무 멋있고 부러웠다. 내가 해도 안 되는 걸 잘 하면 나한텐 그 사람이 신이다.


그 재능을 매일 부러워만 하다가, 부러우면 나도 한 번 노력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백세 인생이니까.


백세 인생인데 36살에 시작해도 100세까지 하면 잘 하게 되겠지. 이제 와서 미대 입시를 할 건 아니고, 취미로 즐길 정도로, 그리고 특별한 사람에게 직접 그림 그려서 선물할 정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백세까지 하면.


그래서 다짜고짜 화실을 등록했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도 없이. 그래서 처음 화실을 찾은 날 어떤 종류의 그림을 그리고 싶냐는 선생님 말씀에 당황했다. 그리는 재료에 따라 유화, 수채화, 펜화, 연필화 등등이 있고 그림 소재에 따라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등이 있다. 입시할 게 아니고 취미로 할거면 무작정 다 할 순 없다. 하나 선택해서 백세까지 파야한다.


"음....지인의 얼굴을 그려서 선물하고 싶어요."

그렇게 얼렁뚱땅 연필로 인물 소묘를 시작했다. 화실은 주1회, 4-5개월 다녔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시작은 잘 하는 편이나 지속력이 약한 편이다. 그렇게 몇년 쉬다가 40 넘어서 다시 생각나 연필을 잡았다. 이번엔 화실에 나가지 않고 혼자 집에서 그리니 나름 스타일이라는 게 생겼다. 화풍이라고까진 못하겠다.


몇 년 쉬는 동안 손이 굳긴 하였지만 천천히 감을 찾아가 보려한다. 계속 말했듯, 백세인생이니까.


늦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안 하면 후회합니다. 일단 시작해보면 늦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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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