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의도는 없었다는 말로 포장되는
"살라미 전술"이라는 말이 있다. 목표한 바를 한 번에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목표에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마치 살라미를 얇게 자르듯 티 안나고 은밀하게. 우리 속담 중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의 가랑비 전술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살라미 전술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함에도 천부적으로 이 전술이 몸에 베어 있다. 어떤 행동을 함에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불편함과 불쾌함을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쌓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한테 한 번 걸리면 미지근한 물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된다. 끓는 물에 넣으면 튀어 오르지만 미지근한 물에 담근 채 온도를 올리면 죽을 때까지 자기가 죽는 줄 모르는 그 개구리 말이다.
마찬가지로, 살라미 전술의 타겟이 되면 아무리 예민한 사람도 처음엔 잘 모른다. 사람은 다양하다고 배웠으므로 첫 장의 살라미에는 어떻게든 맞추려 한다. 두 번째 살라미는 뭔지 모를 이질감이 있지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세 번째 살라미는 불편한데 이런 걸 불편하다고 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네 번째 살라미쯤 되면 이제 수인한도를 넘어선다. 이제 다섯 번째 살라미는 불편함 정도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불쾌하다.
부장의 첫 번째 살라미는 출장 중 전화였다. 나는 재판 때문에 타지역 출장 중이었고 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낮 시간이고 출장기간은 업무시간이라 할 수 있으니 전화 자체를 달리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업무상 전화를 할 수 있지. 그런데 전화내용이 의아했다. 전화 건 목적이 주말에 회사 스포츠단 경기가 있는데 응원차 참석할 수 있냐고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아니, 재판 때문에 타지역 출장 중이고, 그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을 할 예정인데 복귀해서도 확인하면 될 것을, 이게 출장 중 통화까지 하며 확인이 필요한 일인가 싶었다. 티켓을 미리 확보해야 하거나 자리를 선점하거나 우리부 주체로 뭔가를 준비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팀원들을 시켜도 무관한 일이다. 뭐, 실없이 이런 걸로 전화를 다하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뭐 이런 걸로 전화를 다 하나 싶은 그런 전화가 반복되니 불편함이 쌓여갔다. 긴급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하거나 보안유지가 필요한 것도 아닌 내용을 개인 카톡으로 보내는 것도 불편했다. 다른 부서와 같이 외근하면서 다른 부서 사람들은 따돌리고 나와 단 둘이 이동을 하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적어도 납득할 이유라도 설명해 주지,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장은 나에게 그 부서 사람들이 들릴 데가 있는지 외근지에서 만나자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외근지에 미리 도착해 있는 그들을 만나, "어머, 과장님 어디 들릴 데 있으시다더니 더 일찍 오셨네요."라고 했더니, "팀장님이 어디 들리실 데 있으셨던 거 아니세요? 부장님이 먼저 가라 하시길래 저희는 팀장님이 어디 들리시나 했는데."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세 번째 살라미였다. 그리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살라미도 멈추지 않았다.
(분량 상 1, 2편으로 나누어 업로드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