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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TOSTEP May 24. 2024

장사일기 ep.10(번외 편)
- 왜?고깃집?삼겹살?

[효율성&지속성]

[직장생활을 통해 배운 것 효율성 & 지속성]

 장사일기를 처음에 쓸 때도 고깃집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긴 했다. 다만 생각해 보니 첫 글에서는 고깃집을 하는 이유라기보다는 장사, 식당, 음식점을 하는 이유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첫 주를 마감하면서 정리하는 차원에서 왜 고깃집이어야만 하는 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보기로 한다. 


 CJ, SM, 삼양식품 등의 중견 혹은 대기업 블랭크, 메이크어스 등 작은 스타트업 등 도합 20년에 가까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다 해 보았다. 재무 베이스로 시작해서 투자, 기획, 제작, 마케팅, 결국에 COO까지 해 보고 챕터 1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거의 20년 가까이 트렌디하다는 엔터사업에 있으면서 내게 남은 건 뭘까? 내가 배운 건 뭘까? 그리고 부질없는 것은 또 뭘까?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그런 것 같고 사실 아직도 불쑥불쑥 이 아쉬움들이 단전에서 올라올 때도 있어서 이것을 누르는 일이 종종 있다. 내게 남은 것, 부질없는 것 등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풀어보는 것으로 하면 좋을 것 같고 그러면 내가 배운 것은 도대체 뭘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사족이 붙고 어쩌고 저쩌고 하겠지만 (요즘은 그 사족으로 심지어 강의해서 구라파이터로 돈 버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딱 두 단어인 것 같다. "효율성"과 "지속성". 20년 동안 내가 배운 것이다. 철저하고, 처절하고, 잔인할 정도로 효율성과 지속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회사의 프로젝트건 개인의 발전이건 뭐든 간에 효율성과 지속성에만 집착하고 추구한다면 정량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정량적인 우수한 결과가 모든 것을 이이익스큐즈 해 줄 때가 많다. 나의 미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위해서는 닥치고 효율성과 지속성에만 집착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과업을 선결한 후에는 그것이 효율성과 지속성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나의 판단 기준으로는 '고깃집'은 효율성과 지속성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효율성 측면. 고깃집은 다른 식당 대비 음식을 만드는 과정, 즉 Cook에 있어서의 효율성과 맛의 편차에 대한 효율성이 타 음식점 대비 상당히 우수하다. 특히, 양념에 재워서 굽는 형태가 아닌 생고기의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제주도삼겹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음식점에 대한 간접경험은 상위 1%라고 판단한다. 단, 식당을 운영하는 직접경험에 있어서는 초짜이기 때문에 하위 1%이다. 그러한 내가 Cook이 많은 음식을 선택한다면 가능성이 있겠는가? 확률을 떠나서 비상식적이다. Cook에 대한 능력치가 낮기 때문에 Cook을 최소화해야 한다. 극단적으로는 Cook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고깃집은 그것이 가능하다. 고기를 굽는 행위를 손님이 할 수 있고 캐주얼한 고깃집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삼겹살이란 요리를 팔지만 Cook에 개입이 극단적으로 낮다. 난 이것이 효율성이라 본다. 지금 나의 취약요소인 Cook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Cook이 최대한 된 여타의 요리들과 비슷한 수준의 만족을 줄 수 있다. (물론, 난 계속 Cook을 연마하고 있다. Cook을 배우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시간을 당기고 단축하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맛의 편차이다. 회사에서의 업무도 그렇지만 프로세스가 많아지고 개입되는 요소들이 많아지면 불량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또 그 불량을 해결하기 위해서 리소스가 투입되어야 한다. 요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요리라는 것이 아무리 매뉴얼화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 맛을 일정하게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는 식당이 성공하는 것이다. 고깃집의 경우 Cook개입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맛의 편차를 좌우하는 것으로 '좋은 재료의 수급'이라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일종의 프로세스 단순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좋은 재료의 수급에 있어서는 상위 1% 티어 혹은 그 근처에 있다. 

 

 지속성. 어쩌면 효율성보다 이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 다소 비효율적이라도 천년만년 지속될 수 있다면 긴 시간 동안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지속성은 중요하기 때문에 고깃집을 선택했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얘기다. 인간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생명공학적으로 모르겠지만 향후 20년 안에 이 명제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디즈니플러스의 지배종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격저항성이 그나마 덜 하고, 동물성 단백질이며,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될 정도로 꾸준하게 사랑받는 음식. 삼겹살이다. 고객이 지속적으로 찾는 음식이다. 선택을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심지어 삼겹살을 팔 수 있는 제반 리소스까지 가지고 있는데 다른 음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엔터산업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몸에 체득된 것이 아마 이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소위 말하는 '원히트원더'로 사라진 콘텐츠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팔 수 있어야 하고 지속성을 잃는 것에 대한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지속성이 없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엔터산업 쪽 한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한 10여 년 전쯤 대한민국을 강타한 크레용팝이란 걸그룹의 빠빠빠라는 노래가 있었다. 보자. 현재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음식 쪽은 더 쉽다. 한 단어면 충분하다. '탕후루'. 지속성에 대한 경계는 필수다. 


 직장생활을 20년 동안 배운 것이 효율성과 지속성의 추구 밖에 없진 않겠지만, 장사를 하겠다고 하는 이 시점 다른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ep.10 -끝-

* 매일은 아니겠지만, 장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의 창업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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