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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 Aug 22. 2020

고양이 목욕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요즘이다. 최장기간 장마물속에서 사는 것만 같은 축축함을 벗어나기만 바랬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연일 내리쬐는 태양을 견디기 녹녹지 않다. 우리 집 고양이 오월이가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갑작스레 연중행사를 치러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로 고양이 목욕이다.


고양이는 목욕을 하지 않아도 '그루밍'으로 자신의 몸을 가꾸는 동물이다. 때문에 목욕 필수적인 행위가 아니다.


오월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은 자신의 털을 혀로 쓸고 빨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다. 침을 묻혀도 냄새가 나지 않다니 그야말로 신기하다. 하지만 그런 오월이도 몇 번이나 목욕을 했다.


한 번은 신발장을 정리하는데, 신발 무덤에서 신이 나게 뒹굴고 먼지를 한껏 묻혔다. 그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냥 놔둘 수가 없어 첫 목욕을 했다.


한 번은 비 오는 날 가출했다가 배가 새카매져서 돌아온 뒤 눈물의 목욕을 했다. 또 한 번은 몰캉한 발을 만지다가 발에서 쉰내가 나는 것을 들켜 '냥빨(고양이 빨래)'을 당했다.


오늘은 마지막 이유와 비슷하다. 누워있는 오월이의 발바닥 냄새를 맡으니 '그동안 비를 머금은 창틀을 밟았구나' 하는 냄새가 났다. 꼬릿 꼬릿 하다기 보단 뭔가 시큼했달까.


 겨울엔 목욕 후 젖은 털을 말리는 동안 낮은 기온이 신경 쓰인다.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봐 함부로 도전할 수 없다.


반면 여름은 그냥 놔둬버려도 젖은 털이 오히려 더위를 날려주는 좋은 효과를 줘 지금 계절이 가기 전에 한번 씻길 요량이었다.


오늘이었다. 오늘은 최근의 날처럼 더웠고, 재택근무 덕분에 시간이 있었다.


몇 번 냥빨을 해봤던 나는 마음을 먹자마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몸을 적실 물헹굼 물을 받아놓는다. 또 고양이 전용 샴푸와 물을 황금비율로  준비해둔다. 준비 완료다.


이제 오월이를 찾아 잽싸게 낚아채 온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은 뒤 천천히 고양이를 들어 발에 물을 묻힌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 얼마나 싫어하는지 물 많이 먹지도 않아서 제일 많이 걸리는 것이 신장 관련 질환이다. 오월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발에 물이 닿자마자 오월이는 아웅 하고 울어버린다.


오월이도 한두 번 해본 고양이가 아닌 만큼 그래도 처음보다는 침착함을 유지한다. 오월이는 뒷발로 세면대에 서 앞발로는 나에게 매달려 사정한다. 집사야 그만해. 나는 봐주지 않는다. 오늘은 냥빨을 하리라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지. 안은 채로 내 잠옷이 적셔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양이를 씻는 방법은 이렇다. 털 뭉텅이들을 충분히 적신다. 샴푸를 비빈다. 재빠르게 헹굼물로 입수다. 샴푸를 씻어내고 마지막으로 샤워기를 통해 씻어낸다. 수건을 감싸고 나온 다음 재빠르게 물기를 닦아준다.


여름에 씻기면 좋은 점은 털이 완전히 마르지 않더라도 감기에 걸릴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월이는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매일 내가 머리 말리는 건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면서 왜 그럴까. 자신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싫은 걸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월이를 놔두고 나도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는다. 이미 폭삭 젖은 옷은 살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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