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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hyeonju Oct 26. 2016

사랑하지 말 걸 그랬어

사랑이라는 마음의 사칙연산


  그러지 말 걸 그랬다. 단골 미용실에 데려가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다듬자고 하지 말 걸 그랬다. 매일같이 가는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지 말 걸 그랬다. 언제부터 그렇게 가까운 사이었다고, 어째서인지 다들-

  "오늘은 같이 안오셨네요?" 하고 묻는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사귄다는 것은 곧 나의 일상에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함께 시간과 공간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헤어지고 나면 그러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할 것들이었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좋은 추억이 있는 곳에서 둘 만의 새로운 추억을 남기는 것과 같은 일들은- 그 때는 좋았겠지만- 이별 뒤에는 딱 행복했던 만큼의 슬픔을 가지고 오곤 한다. 


  

  헤어지고 난 뒤에 후회되는 것들은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 할 때 원래 들어가는 시럽에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던가, 손톱 아래 큐티클은 그때 그때 정리해야 손이 깔끔해 보인다던가, 남자들도 눈썹을 정리해야 인상이 단정해 보인다던가 하는 것들을 알려주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계가 싫어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입술을 앙-다무는 습관이 있다는 것과 같은,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까지 알게 했던 것을 후회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낙엽마저 낭만적인 가을 풍경으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면, 떨어진 은행 조각 하나 하나마다 마냥 서글퍼보이게 만드는 것이 이별이다. 그 순간에 당장 아름답게 느껴질 이별은 어디에도 없고, 나는 그 순간에 그런 말이나 듣겠다고 커피 값을 냈다고 후회할만큼 소심하고 찌질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좋자고, 같이 행복하자고 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후회되는 순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가던 미용실에 몇 달 동안 발길을 끊었고, 매일같이 마시던 바닐라 라떼는 한동안 입에 대지도 않았다. 평범하고 별 일 없던 일상이 함께여서 더 특별해 질 수 있었다면, 결국에는 본전도 못 찾게 된 것이다. 아- 어차피 헤어지고 나면 그러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할 것들이었다면. 



   우리는 각자 서로가 없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사랑했던 시간의 끝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남은 마음은 어디에도 쓸 데가 없었다. 누구는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사랑할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던데, 나는 사랑한 것을 후회했다. 우리는 나와 너로 나뉘어졌고, 이 마음의 나머지는 영원히 나누어지지 못할 것이니까. 





  사랑은 필연적으로 나머지를 갖는 마음의 사칙연산이었다. 한참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또 후회하고 나서야, 그 나머지가 내가 아닌 그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던 것들은, 사실은 그렇게 해서 행복했던 것들이었다. 그의 깔끔해진 목덜미가 좋았고, 추운 날 손에 쥐어주던 따뜻한 커피가 좋았다. 그의 손톱을 말끔하게 정리해주고 나면 괜스레 뿌듯했고,  내가 있어 그가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었다. 


  사랑하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했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그러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던 것들은, 실은 마냥 후회만 남기지는 않았던 것들이다. 결국은 마땅히 주려고 했던 마음을 남긴 것을 아쉬워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다음 사랑을 위한 몫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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