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저녁 문앞에 장화를 내놓아야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몰래 산타가 찾아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일은 독일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독일의 산타는 크리스마스보다 3주나 빠르게 찾아온다. 12월 6일은 '니콜라우스 데이(Nikolaustag)’로 우리가 아는 관습처럼 아이들이 부츠를 깨끗이 닦아 문 앞에 내놓으면 밤새 성 니콜라우스가 와서 선물을 놓고 가는 날이다. 기원은 무려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의 주교인 성 니콜라우스가 가난한 사람과 어린이를 위해 몰래 선물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풍습으로 우리한테 익숙한 '산타클로스'의 원형이 기도 한 그의 이름은 니콜라우스였다. 독일에 살기 전까지는 전 세계에서 모두 '산타클로스'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독일에서는 산타를 니콜라우스라고 이름 그대로 부른다.
종교도 없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니콜라우스 데이는 익숙하지 않은 기념일이다. 내가 아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가족과 가까운 친구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고 24일 저녁 서로 교환하며 풀어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발터의 가족 분위기는 모든 가족의 인원수대로 각각의 선물을 준비하고 1인당 1개의 선물보다는 초콜릿과 책, 커피머신, 장갑 등등 필요한 것을 모아서 주는 '선물 꾸러미'의 개념이기에 12월 내내 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추어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선물을 모으는 중이다. 부모님과 누나네와 조카까지 최소 5명의 선물을 준비하느라 매 주말이 쇼핑데이인 와중에 막상 니콜라우스데이를 놓쳤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에게는 주는 선물에 비해 니콜라우스 데이에는 초콜릿이나 쿠키와 같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선물을 이웃에게 전한다.
12월 6일 자정이 넘었고 새벽 한 시가 가까워 집에 돌아왔는데 한층 한층 계단을 올라가며 이웃집 현관 앞의 부츠가 보였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 오늘 선물 주는 날이구나! 남자아이 둘이 있는 아랫집은 아동용 부츠 두 개가 나란히 나와있었고 그 위로 선물꾸러미가 넘쳐났다. 어떤 이웃은 반짝반짝 빛나는 사과도 부츠 위에 올려놨더라. 아, 나도 뭔가 가지고 있었더라면 살포시 얹어놓았을 텐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준비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워하며 우리 집에 다다랐는데... 우리 집 앞에도 선물이 2개나 놓여있었다. 반갑고 감사합과 동시에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함에 난감함이 겹쳐왔다. '아뿔싸! 이번 연도에도 받기만 하는구나! 어쩌나...'
심지어 직접 구운 플레첸(버터 쿠키의 일종 Plätzchen)이라니... 소중하고 귀한 선물을 작년에도 받기만 했었는데 올해도 어김없다. 몇 년 전 아무 준비 없이 집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평일처럼 보내는 와중에 이웃이 문 앞에 놓고 간 선물을 받고 난감한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독일은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 26일은 두 번째 크리스마스로 둘 다 공휴일이기에 슈퍼마켓은 물론 모든 상점이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어디 가서 초콜릿을 구해올 수도 없고 꽃이라도 한 다발 보답하고 싶지만 꽃집이 열었을 리 없어서 염치없이 받기만 한 동양 여자 이웃이 되었다. 그 기억에 올해는 반드시 잘 준비해서 24일 저녁에는 나도 작은 선물보따리를 이웃집 문 앞에 놓겠다고 다짐하면서 12월 6일 니콜라우스 데이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아. 정말 독일의 12월은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가을에 마당 사과나무에 사과가 많이 열렸다고 전해주는 옆옆집 아줌마, 한 달 정도 한국에 다녀오니 못 본 지 오래되었다며 마주치면 반겨주시는 80이 넘으신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 자주 왕래는 하지 않지만 부활절에도 성탄절에도 빼먹지 않고 챙겨주는 옆집 젊은 커플, 내가 말은 안 해도 늘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내 감사한 이웃들에게 살갑지는 못해도 친절하고자 노력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크리스마스이브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연재 브런치북에 최대 30개의 글만 올릴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갑작스레 [베를린 에세이 2]라는 새 브런치북을 만들었어요. [베를린 에세이 1]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독일의 소소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