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0 분지 나자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실내 운동 싫어하지만 겨울엔 별 수 없다. 추워서가 아니다. 아주 춥지 않아도 비가 내리거나 아니면 밤사이 내렸거나. 둘 중 하나가 반복되는 독일 겨울의 땅은 말라있는 날이 드물다. 독일 겨울신발의 질이 좋은 것도 그 이유이겠지. 밑창도 단단하고 두껍고 웬만해선 물에 젖지도 않는다. 하지만 러닝화는 다르다. 슬슬 뛰러 나간다 하면 얼마 안 가 신발이 젖어오고 양말까지 젖어 뛰는 내내 차갑고 불편하다. 내 신발이 유독 가벼운 러닝화라 더 쉽게 젖는 것 일수도 있지만.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보다는 공원이 많은 동네라 달리기 하는 코스도 대부분 산길이거나 공원의 흙길이다 보니 겨울엔 주로 질퍽질퍽한 진흙상태인 것이다. 젖은 땅을 핑계로 자꾸 운동을 안 하니 별 수 없다. 돈을 쓰면 아까워서라고 갈 테니.
얼마 전 스포츠 회원권을 구입하면서 일주일에 5회는 가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구입하자마자 첫날 저녁은 요가를 다녀왔고 오늘은 발레수업을 들었다. 마침 시간에 맞는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초급반이 있었고 자전거로 5분 거리로 고민 없이 신청했다. 시간 맞춰 도착했을 땐 널따란 홀에 약 10명 남짓한 참여자들이 벽을 따라 설치된 바를 잡고 몸을 풀고 있었다. 익숙하진 않지만 그래도 과거 초급 발레를 배워본 기억이 있던 터라 다행히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나도 나름 한자리 잡고 거울을 보고 서있자니 앞 뒤 사람에 비해 짧고 통통하니 나만 성인반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독일에서 내가 유독 초등학생 갔다고 느끼는 때가 발레수업이 아닐까.
시간 하자마자 이게 초급반이 맞을까? 제대로 보고 온 걸까? 싶을 정도로 속도 있게 진행되었다. 살짝 차가운 루시라는 이름의 강사는 미소 없이 빠르게 발레 용어를 내뱉으며 우리가 해야 할 순서를 설명했다. 그리고 알았다. 루시는 분명 불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다. 프랑스이던 벨기에이던 스위스이던 혹은 독일인이던 불어로 말하고 자란 사람이다. 그녀가 말하는 발레 용어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발음들과 너무 달랐다. 쁠리에, 땅뒤, 드가제, 에샤페 등등... 원어로 이 말들을 반복하며 해야 할 동작의 순서를 설명하는데 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앞사람만 따라 하며 반박자 늦게 허둥됬다.
다행히 큰 욕심 없이 '나는 초보니까'라는 마음으로 즐겼다. 나는 누가 봐도 초보니까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지라는 마음이었지만 내 몸을 보는 나 스스로가 웃겼을 뿐이다. 어쩜 다리가 이렇게 짧고 요것밖에 안 올라가는 걸까. 한 30 분지 나자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초급 발레는 이렇게 해서 운동이 되는 게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가벼운 수업이었다. 아마 발레를 금방 포기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나는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운동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동안의 수업이 초급의 수준에 맞춰 '적당히'했었다면 이번 수업은 땀이 났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겨우 따라가는 상황이 싫지 않았고 조금 더 익숙해지고 매일 3시간씩 춤을 춘다는 친구처럼 한다면 달리기 못지않은 강도 높은 운동이 확실하다.
게다가 루시는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다른 학원에 비해 수업 횟수도 많고 모두 혼자 진행하는 그녀는 초보인 내가 봐도 오래도록 가르친 경력이 있는 프로 선생님이었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학생들의 자세 하나 챙길 것은 다 챙기며 가끔 미소를 보이기도 하고 "포지션!"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수업의 분위기를 쥐었다 피었다 능숙했다. 학생 때에는 술렁술렁 진행하는 선생님이 좋았지만 이젠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얻어가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게 아는 계산할 줄 아는 나이라 이렇게 빡빡하고 엄격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다. 무엇보다 영어와 불어를 섞어가며 진행되는 수업이라 그런가 불어 발음을 듣는 기분 좋음도 있었다. 한때 프랑스 유학을 계획하며 불어를 배우다 만 사람으로 늘 미련이 남아있는 언어라 그 특유의 발음을 듣기만 해도 애틋한가 보다. 이번에는 3개월 버텨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