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속인 팔자야

열두 살에 색동옷 입었으면 잘 되었을 텐데...

by 조희진

평소엔 관심 없던 사주팔자며 운세풀이에 관심이 간다. 지푸라기까지는 아니어도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그런 거겠지.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을 견뎌오며 '새해'라는 좋은 구실도 있겠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다. 모든 질문에 답을 찾아주는 AI가 핸드폰 안에 있는데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앱을 클릭한다. 내 생년월일을 넣고 2026년 운세를 알려달라 그랬더니 1분 만에 구구절절 풀어놓는다. 단 몇 분 만에 쓰이는 운세결과에서 내 계획과 의지를 끼워 맞춰보고 알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 맞는지 안맞는지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내가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


2년 전쯤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점'을 보았다. 친구들이 점보고 온 얘기를 하면 귀담아듣지 않고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면서 흘겨 들었던 나였다. 그런데 늘 마음 한구석엔 도대체 내가 가면 무슨 얘기를 해주려나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단순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기에는 꽤 비싼 금액으로 시도하지 않았다가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큰맘 먹고 점집을 찾았다. 나름 정기적으로 점을 보러 다니는 전문가친구에게 도움을 구하고 추천을 받아 갔던 양재동 오피스텔의 점집은 희한하고 신기했다. 나 홀로 처음 방문했던 신점을 봐준다는 곳은 모던한 건물 안에 휘향 찬란한 무속 장식이 가득했고 거실 찬장에는 알 수 없는 명패와 상장이 가득했다. '무속인들도 상을 주고받는구나... 이들도 경쟁사회인가 보네...'


누구에게 쉽게 내 얘기를 못하는 나는 무속인 앞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간략히 내 생년월일을 주고 듣기만 했다. 딱히 물어보고 싶은 내용도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얘기를 해줄지 잠자코 듣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무속인의 첫마디에서 이게 맞나 싶은 말이 나왔다.


"나랑 비슷한 일해야 해. 열두 살에 색동옷 입었으면 잘 되었을 텐데"

"네에?"

"무속인 팔자야"

"그럴 리가요? 저는 보이는 게 하나도 없는데요?"

"아니, 아무 때나 막 보이면 사람 미치지"


정말 그럴 리가 요였다. 눈치도 감도 없는 내가 무슨 남의 팔자를 읽는 무당일까. 그러면서 멀리 나가 살아라, 화려하게 하고 다녀라, 누구 밑에서 일할 수 없다, 본인 꺼 자기 일 해야 한다, 여기저기 돋보이는 일을 해라 등등의 얘기를 듣고 15분 만에 나왔다. 누구는 상담하듯 이런저런 질문도 하며 얘기를 주고받는다는데 나는 영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여서 최대한 빨리 나오고 싶었다. 무엇보다 초반부터 신뢰가 가지 않았던 탓일 수도 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무당팔자라니 돌아오는 길에 헛웃음이 났다.


누구 밑에서 일할 수 없다는 말 빼고는 모두 낯선 말들이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무색무취의 취향을 가졌고 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고자 했다. 신점으로 유명하다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안 믿고는 나의 의지이지만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보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액세서리 하나 하고 다니지 않던 나는 얇은 은목걸이를 하나 구입했고 여전히 잘 차고 다닌다. 그 후, 은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내게는 금보다는 은이 어울리는구나를 알았다. 무속인의 말로 크게 미래를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한테 무엇이 어울리는지는 하나 찾은 셈이니 나쁘지 않았다고 합리화 중이다.


AI가 말해주는 새해의 내 운세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일반적이었다. 귀인이 있을 것이고 건강을 조심하라는 등의 말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늘 감사한 사람들은 있었고 건강은 누구나 조심해야 하는 것이니까. 아무리 독일에 오래 살아도 우리에게 흥미로운 미신의 세계는 깊고도 깊었다. 독일에 사는 한인 커뮤니티엔 자주 '온라인 사주, 카톡으로 사주 봐드립니다'등의 광고가 올라오고 주변에 직접 본 사람들이 종종 있기도 하니 말이다. 무속인이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그것도 나름 동기부여가 되는 힘 아닐까. 나에게는 귀인을 만날 해라니 만나는 모든 이들을 귀인처럼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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