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한국의 명절이 겹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한국은 지금 밤이겠지 엄마 아빠는 뭐 하고 계실까

by 조희진

크리스마스의 들뜸이 한풀 꺾이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함이 찾아왔다. 가방 가득 채워 받아온 선물이 여전히 가방에 들어있다. 집에 돌아온 다음날 남아있는 신맛만 가득 남은 김치로 찌개를 끓였다. 혼자 있으면서 요리할 일은 거의 없고 특히나 반찬이 많이 필요한 한식은 더더욱 안 하는 나지만 이날만큼은 예외다. 일주일 내내 유럽식 크리스마스음식 가득 먹고 온 한국인들이 라면 끓여 먹는 날이라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 집에 라면을 미리 준비해놓지 못해 아쉬워만 하고 있었는데 지난가을 김치 좀 담아보겠다고 설친 내 결과물이 구석에 숨어있었다. 맛없어서 안 먹던 시어 빠진 김치가 소중했다.


김치요리에 밥 이외의 반찬은 없지만 부족하지 않았다. 한국은 지금 밤이겠지 엄마 아빠는 뭐 하고 계실까.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한 주는 발터의 부모님 집에 방문했었다. 누나의 가족도 모두 모였고 이제는 제법 친해진 12살 조카와도 어색함 없이 수다를 하게 되니 특별히 낯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오래간만에 가족들 모이면 서로 티격태격도 하고 엄마와 자식들이 잔소리를 주고받으며 가끔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감정선은 참으로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가 그 정신없는 명절기간 내내 나는 더욱더 한국에 계신 엄마 아빠가 생각났던 이유가.


12월 24일 저녁식사를 근사하게 차렸고 가족들은 나름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정갈하게 식탁에 앉았다. 그만큼 중요한 명절의 시작이었다. 나도 엄마아빠의 한국시간에 맞춰 영상통화를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불교신자이신 내 부모님에게 크리스마스이브는 평범한 평일 저녁이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간단하게 안부를 주고받고 연말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묻고 오늘 저녁반찬은 뭐해먹었는지, 강아지는 아프지 않은지 물어보는 통화가 끝났다. 짧은 영상통화가 끝나고 희한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오늘 한국은 명절이 아니어서'


만약에 크리스마스가 한국에서도 명절이었다면 독일에 사는 내가 독일 가족들 사이에서 정신없게 보내는 사이 내 부모님 두 분만 단둘이 보내시겠지. 상상만으로도 속상했다. 아니면 나는 한국에 간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발터는 서운해할 테이고 이내 서운한 감정은 점점 불어나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겠지. 아, 이래서 명절에 부부들이 싸우는 걸까?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명절기간이면 유독 긴장감 높던 엄마와 아빠는 다 이유가 있어서였구나. 한국의 명절문화와 며느리들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었다. 독일이나 한국처럼 못 길거리도 아닌데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이유로 몸 힘들어가며 요리하고 동시에 집에 계실 친정엄마아빠 생각하면 병이 안 나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해외에 사는 것이 누군가는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부러워할지 몰라도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어 세상 공평한 것이라고 늘 생각했고 사실이기도 했다. 내가 유럽에 살면서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부모님을 자주 볼 수 없는 것, 가까이서 챙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추석이나 설에 꼬박꼬박 갈 수 없는 것이 너무 당연해진 삶이다. 그런데 한국 명절에 찾아뵙지 못할 때에는 이렇게 안타깝고 속상하진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독일 명절에 유독 마음이 무겁다. 내 무거운 마음과 달리 별일 없이 늘 그렇듯이 영상통화받아주시는 부모님이 감사한데 아무래도 허전하지 않으실까 하는 건 내 기우일까. 괜스레 멀리 있는 딸 마음 불편할까 아쉬운 내색 하나 안 하시는 노인두분이지만 나이 듦은 무시 못하는지 숨겨진 아쉬움이 조금씩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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