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매일매일 작은 성취감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by 조희진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25일 크리스마스날 점심을 먹고 나 혼자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발터는 가족들과 며칠 더 보낸 후 베를린으로 올 예정이다. 베를린에서 이례적으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올해는 나만 조금 이르게 베를린행 티켓을 끊었다. 명절 당일날 기차는 오히려 한산해서 좋다.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홀로 나오는 길이 아쉬움이 살짝 있긴 했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좋기도 했다. 올해는 왜인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유독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울렁울렁했는데 어젯밤에도 이상한 꿈을 꾼 것을 보면 아직도 내 안의 불안정함은 가라앉지 않았나 보다.


어제 발터에게 손으로 쓴 카드에 짧게나마 진심을 담았다. 혼자였으면 꽤나 어려웠을 2025년이었는데 의지할 사람이 옆에 있어준 덕분에 그럭저럭 지나올 수 있어 고맙다고. 여전히 두 번째 스무 살을 겪는 것처럼 변하지 않은 질문이 깊이만 더 깊어져 몰아쳤다. 이십 대에 공부를 했고 삼십 대에 일을 했는데 사십 대가 되니 모두 물거품처럼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고 앞으로 내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허망했다. 여전히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허덕이는 나 자신이 싫었고 남들과 비교하게 되었다. 주변 지인의 사소한 성취도 내 눈엔 크게 보였고 나는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2025년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작아지고 있었고 한껏 예민해졌다.


번잡하고 소비하는 12월은 그나마 챙겨야 할 것이 많아 빠르게 지나갔는데 점점 연말이 다가올수록 기대와 불안감이 올라온다. 내년에는 그래도 올해보다 나아지려는지의 기대감과 올해 이렇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자책과 불안에 잠을 설치나 보다. 무엇이든 생각만 말고 우선 지르고 봐야 한다는 주변의 부추김에 살짝 동하다 이내 가라앉는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잠깐 기세 등등 했던 계획과 포부가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는 원래 앞뒤 안가리고 일을 내고 보는 스타일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주춤거리는 사람으로 쪼그라들어져 있었다. 뜬금없이 런던 유학을 결정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독일을 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얼마 없는 장점 중에 하나가 추진력이었던 것 같은데 나이먹음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브런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매일매일 작은 성취감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궁지로 몰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빛과 같은 것이었기에 단 귀찮거나 미루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읽어주고 댓글을 달아주면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놀랍고 감사했다. 단 한 번도 온라인상에 내 본명으로 무엇인가를 노출해 본 적이 없었고 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나름 큰 도전이기도 했고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알 수 없는 '보람'이라는 묘한 감정이 계속하게 만든다. 한껏 바닥까지 내려간 나를 끌어올리는 데에 내 이야기를 기록하고 매일매일의 약속을 지키는 행위가 타인에게 받는 칭찬이나 평가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니 스스로 놀랍다.


해가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계획하고 기대한다. 답이 없는 질문들을 반복하는 것이 과연 헛되지만은 안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시간에는 그저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 적어도 내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살게 되는 시작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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