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로 크리스마스는 복수형

24일부터 26일까지가 전체 크리스마스날

by 조희진

드디어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독일과 가까운 덴마크에서는 사실상 크리스마스이브가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선물을 주고받는 실질적인 크리스마스라고 하는데 독일도 엇비슷하다. 저녁을 같이 먹고 선물을 풀어보는 날. 그렇다고 25일이 중요하지 않느냐? 물론 아니다. 공식적으로 25일은 '크리스마스'이고 26일은 '두 번째 크리스마스(zweite weihnachtstag)'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문화권이었던 독일은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하루짜리 축일이 아닌 여러 날 이어지는 교회 축제기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어로 바이나흐텐'Weihnachten'도 단어 끝에 '-en'이 붙는 복수형이다. 왜 독일이 크리스마스에 진심인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침은 평소와 같았다. 휴일이니 느지막이 일어나 차를 끓이고 커피를 내리고 아침을 먹는다. 단, 빵은 평소에 보기 힘든 대형 빵이 등장했다. 이미 며칠 전에 주문해 놓은 이 지역 전통 빵이라는 프랭키시 뢰미시 브로트(Fränkisches Römisches Brot)를 자르고 각종 치즈와 햄, 과일잼, 꿀을 곁들인다. 평소보다 조금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 먹고 각자 자기 맡은 일을 위해 일어났다. 완성되지 않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팀, 오늘 요리 담당팀 그리고 돌아가신 가족의 묘가 있는 근처 묘지에 초를 놓고 오는 팀 등등. 나는 발터와 요리팀이었고 우리의 메뉴는 이탈리아 수프인 미네스트로네와 그와 곁들일 폴렌타였다.


가족마다 각자의 명절문화가 있는 것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어느 가족은 24일 저녁 먹는 음식이 전통적으로 감자샐러드와 소시지라던가, 라클렛등으로 정해진 가족도 있고 매번 외식을 하거나 케이터링을 하는 집도 있다. 발터의 가족은 정해진 음식이 있다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편이었고 고기를 안 먹는 나를 배려해서 평소와 달리 채식메뉴를 정했다. 이렇게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는 와중에 몇몇은 아직 다 준비하지 못한 선물을 막판까지 포장하고 카드를 쓰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선물 포장은 다행히 다 준비해 왔지만 카드까지는 다 못 끝낸지라 가족들의 눈을 피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화장실에서 마무리했다. 그렇게 2025년 마지막 나의 긴 손 편지는 화장실에서 쓰였다.


12살 조카는 저녁 먹고 선보일 마술쇼를 며칠 전부터 준비했고 어른들은 이 재롱잔치를 보며 연신 진행되는 귀여운 마술에 감탄해 준다. 그리고 드디어 다가온 오늘의 하이라이트 선물 교환의 시간. 세상에 총 어른 5명 어른 1명이 모인 오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인 선물이 대략 50개는 되었다. 1인당 주고받는 게 10개라는 이야기인데 평소에 오늘을 기다리며 서로가 필요할 것 같은 모든 물건을 도토리처럼 모아둔 것이다. 비싸고 거한 선물이기보다는 주는 사람은 내가 써보고 좋았던 것을 한 개 더 구입한 뒤 크리스마스 선물 박스를 차곡차곡 채워가는 재미를 즐기는 것이고 받는 사람은 하나하나 풀어보는 재미로 이 시간을 다 같이 즐기는 것이다.


나도 지난 10월 오사카를 다녀오며 챙겨 온 일본 초콜릿과 녹차를 이제야 선물로 선보였다. 이에 더해 지난여름 할머니가 무심코 아이패드에 스케치한 손자와 아들의 초상화를 프린트해서 액자를 만들었고, 귀여운 병아리무늬를 수놓은 모자를 준비했다. 늘 내가 준비한 것보다 더 많이 받는데 이번엔 늘 발이 차가운 나를 위해 따뜻한 양털 실내화와 새로 나온 초콜릿, 지역에서 로스팅한 유기통 커피콩 등 당장 내일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 찼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든 것은 역시 나를 제일 잘 아는 발터에게 받은 닥스훈트모양의 가죽키링과 호텔&식당 이용권이었다. 베를린의 유명한 부티크호텔을 같이 지낼 수 있는 사용쿠폰을 손수 만들어 매우 작은 포장박스였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간단히 하루를 정리했지만 즐거운 만큼 온 신경이 쓰이는 명절은 명절이다. 크리스마스용 붉은 테이블보와 어울리는 그릇은 무엇인지를 한참을 고민하고 올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어느 콘셉트로 할지를 논의하고 선물이 겹치지 않을지 눈치껏 체크하는 일을 한국에서는 해본 적이 없다. 완전히 결이 다른 문화의 명절을 지내면서 생각했다. 한국에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라고. 한국도 이처럼 가족이 모이는 번잡스러운 명절이었다면 독일에서 명절 챙기느라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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