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명절 크리스마스를 시작합니다.
한 달 내내 주말마다 다니며 모은 선물꾸러미를 들고 기차를 탄다. 목요일이 크리스마스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주부터 휴가를 내고 가족을 방문할 것이다. 나와 발터가 캐리어와 배낭에 며칠 지낼 옷가지와 선물을 가득 넣고 여러 개의 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탄 기차에는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었다. 가방을 여러 개씩 들고 강아지도 함께 타고. 그렇게 도착한 밤베르크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잠깐 크리스마스마켓도 둘러보고 츄로스도 사 먹었다. 이렇게 지나치다 들른 크리스마스가 올해는 전부가 되었다.
어제 베를린에서 밤베르크까지 기차로 3시간 걸리는 길이었지만 고됬다. 출발 직전까지 선물을 사고, 포장하고 연말에 친구가 온다니 집도 치워놓고 부랴부랴 마일즈(공유자동차)로 겨우 기차시간 맞춰 도착해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덕분에 밤새 꿀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고는 앞으로 휴일의 일정을 세웠다. 첫 번째는 나무 시장에 가서 크리스마스 나무를 구입하고 두 번째는 23일부터, 24일 크리스마스이브,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26일(독일의 '공식적인' 두 번째 크리스마스이다)까지 누가 어떤 요리를 할지 정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장보기로 각자 요리에 필요한 재료 리스트를 쓰고 슈퍼에 간다.
명절은 명절이다. 늘 우리 집으로 친척들이 모이고 설이면 떡국 끓이고 추석이면 송편 빚는 우리 집이 생각났다. 큰엄마와 작은엄마 모두 하루 일찍 오셔서 전을 부치고 튀김을 튀기는 하루 종일 요리만 하는 날이다. 그에 더해 호스트인 우리 집은 손님들이 오시기 전 시장을 두 번, 세 번씩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놓는다. 그 모든 준비과정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30년 넘게 명절을 치른 엄마는 장 봐야 할 목록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재료 리스트가 있었고 일의 순서가 있었다. 열명이 넘는 친척들을 맞이하며 서너 번씩 밥을 차리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명절 음식 종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겪은 발터가족의 명절은 조금 달랐다. 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 평소에는 엄마이지만 명절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딸과 아들, 엄마가 하루에 메뉴 하나를 정해서 요리한다. 요리도 매번 다양한 메뉴를 생각하고 겹치지 않도록 상의한다. 물론 상의하고 장 보는 시간이 매우 길기는 하지만 그 시간 자체를 가족이 모여서 하는 일로 생각하는 듯했다. 남쪽 독일의 특성상 고기류의 음식이 많고 주로 고기요리를 선보이던 발터의 엄마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정성 가득 들여 굴라쉬, 슈니첼, 오리요리 등을 하신다. 늘 독일 식당에서나 슈퍼마켓에서 봐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곁들여지는 독일식 대형 감자경단인 클뢰세(Klöße)를 만들기 위해 감자부터 깎고 삶아 으깨고 빵과 재료를 섞어 다시 손으로 빚어 물에 살짝 데친다. 메인 요리가 시작도 전에 클뢰세를 만드는 데에만도 두 시간은 훌쩍 간다.
슈퍼마켓에 수십 개의 종류가 있어 대부분 사 먹는 오이피클도 여름 오이철에 가득 담아 지하창고에 가득 쟁여두셨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 꺼낸다. 며칠을 손질해서 몇 개월을 담가놓은 시간과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 식탁 위에 오르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침식사에 나오는 온갖 종류의 잼도 모두 지난여름 정원에서 딴 베리류들로 만들어진 것이고 빵까지는 집에서 굽지 않으나 가족들이 좋아하는 곡물빵을 단골로 가는 빵집에 미리 주문해 놓았다. 이뿐인가, 도착한 집에는 8개의 커다란 쿠키통에 가득 플레첸(Plätzchen) 8종류가 구워져 있었다. 독일 전통 크리스마스 쿠키로 버터가 들어간 다양한 곡물 반죽에 말린 과일, 마지판, 초코 등을 넣어 구운 과자로 오며 가며 집어먹으면 한없이 먹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 반갑고 으레 하는 보드게임이 늘 생각하는 것보다 재밌고 온몸이 설탕으로 채워지는 듯이 쿠키와 케이크가 널려있는 명절 분위기가 정신없으면서도 따뜻하니 좋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에 있는 가족생각이 더욱 진하게 난다. 내년에는 두 번 한국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한국행 비행기표를 보게 되는데 아마도 이게 가장 애틋한 새해 바람이고 계획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