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엔 그럴 싸한 뭇국이지만 한국 겨울무의 맛이 빠졌다
흐린 겨울아침 일어나면 침실에서 나옴과 동시에 무선 청소기를 잡는다. 거실과 주방까지 가면서 청소기를 돌리면 아담한 집이라 금방 끝난다. 정신이 차려지기도 전에 청소기를 한 바퀴 마무리하고 물을 끓여 차를 우린다. 그리고 핸드폰을 본다. 잡에서 깨고 최소한 30분이 지난 후에 핸드폰을 보고자 노력한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좋은 습관 하나는 침실과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들고 가지 않는 것이다. 자기 직전과 아침에 눈 뜬 직후에는 되도록 핸드폰을 멀리하자는 생각으로 처음 스마트폰이 생겼을 때부터 습관 하다 보니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필요한 것 확인만 하고 SNS을 확인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꽤나 어렵다. 나도 모르게 메일과 메시지를 체크한 후 자동으로 인스타그램과 스레드 등의 다양한 앱을 차례대로 키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게 된 들깨로 뭇국 끓이는 영상은 머릿속에 깊이 남았다.
혼자 있는 날은 요리를 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고민도 없이 집에 오는 길에 무를 샀다. 뭇국을 끓여야겠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평소에는 없는 들깨가루와 들기름도 집에 있겠다, 영상 속 레시피의 재료는 간단했고 무만 사면 되었다. 겨울무는 맛있다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귀에 낯익은 말이다. 엄마가 그러셨을까?, 할머니가 그러셨을까? 기억은 못해도 자라오면서 많이 들은 말이겠지. 영상 속 폴폴 연기 나는 국 속의 푹 익은 무는 보기만 해도 달짝지근했고 들깨가루를 더해 뭉근히 끓인 국이 겨울 추위를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이 제일 좋다는 겨울 무로 국을 끓이니 양념은 국간장, 소금만 해도 충분했다.
영국에서는 본 적 없는 큰 무를 독일 마트에서 발견하고 신기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독일에서는 영국에 비해 한국의 채소와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다. 한 번은 농부들이 여는 주말 시장에서 알타리 비슷한 무도 봤어서 본 김에 김치를 담아야 하나 했지만 가격이 꽤나 비싸서 구경만 했던 적도 있다. 오늘 들른 슈퍼마켓에서도 당연히 무가 있었는데 한국 무에 비해 가늘고 길었다. 가끔 이렇게 레티시라고 부르는 큰 무나 배추를 사면서 나 말고 사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도 여전히 몇 개 없는 무는 인기가 없었고 독일사람들은 과연 이 무를 사기는 하는 걸까 싶었다.
그 인기 없는 무와 배추를 한국사람은 부지런히 사서 김치를 담근다. 아시아 슈퍼마켓에 가면 액젓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중국식 피시소스가 종류별로 있고 한인 슈퍼마켓에 가면 멸치액젓, 참치액젓 대부분의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고춧가루야 다들 한국에서 부지런히 공수해 오니 기본적으로 있겠지만 혹시 없어도 아시아마트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독일에서도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물엿, 도토리가루, 미숫가루, 말린 나물까지 한국 보다 약간 높은 가격으로 대부분 구할 수 있다. 단, 한국에서 구해오는 것에 비해 질은 확연히 떨어지는 제품이 많다. 김치는 부지런하면 떨어지지 않게 담가먹을 수 있는 환경이고 가끔은 독일사람들도 유튜브 보고 담아먹는다고 들었다.
그러면 맛이 완전히 같을까? 전혀 아니다. 감자도 독일감자와 한국감자의 맛이 다른데, 겉모양이 같은 배추이고 대파일지라도 미미한 맛의 차이가 있다. 특히,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절이는 과정에서 당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일 배추는 수분이 많고 절여도 절여도 한국식으로 싹 물기가 빠지며 절여지지 않는다. 밤새 절여두어도 아침이 되면 아직 통통한 배추가 신기할 따름인데 그게 최선이다. 나중에 김치에 살짝 물이 생길지언정 그냥 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김치냉장고가 없는 동네에서 맛있는 김치는 너무 오래되지 않은 것이야 하니 한 번에 많이 담는 것도 쉽지 않다.
나의 뭇국도 그랬다. 들기름과 간장으로 무를 살짝 재워두고 그사이 열이 달아오른 냄비에 들깨가루를 볶고 코인 육수 한 알 넣어 물을 붓는다. 재워진 무와 대파를 넣고 끓이면 완성되는 초간단 메뉴라 다음에 또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름 만족스러웠다. 보기엔 그럴 싸한 뭇국 한 그릇을 먹으면서 여전히 한국의 맵싸름하면서도 달큼한 그 겨울 무가 한번 더 생각이 나는데, 그 한국 뭇국의 감칠맛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직접 요리 한 한국음식 잘 먹고도 살짝 아쉬워 엄마 밥상이 생각난다. 엄마는 요즘 무슨 반찬 해서 드시는지 내일 전화나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