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명절을 준비하는 방식, 요리만큼 중요한 선물.
베를린에 있는 대형 문구점 모듈러Modulor.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문구점이라기보다는 문방구계의 이케아라고 해야 할까. 온갖 종류의 볼펜과 종이부터 시작해서 수첩 및 노트는 물론 나무, 플라스틱, 금속재료, 고무, 천 등등 공예 및 미술작업을 하기 위한 도구는 모두 있다고 보면 된다. 건축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형 재료와 조명을 손수 만들 수 있는 전구와 연결 선, 프레임도 있고 한편에는 책상과 의자 등의 사무용 가구도 있는 거대한 문구, 미술, DIY 재료 상점이다. 이케아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듯이 모듈러에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은 금방 간다. 가격이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세상엔 예쁘고 필요 없어도 갖고 싶은 것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다.
주변 지인들하고 얘기해 보니 이번 주에 한 번쯤은 다 모듈러에 다녀왔거나 다녀올 계획이 있는 듯했다. 선물을 사고 포장을 해야 하는 시간이니까. 크리스마스가 다음 주이니 직전에 분주하지 않으려면 슬슬 움직여야 한다. 나도 오늘 프린트샵에 가서 준비된 드로잉파일을 프린트하고, 이에 맞는 액자와 종이를 사기 위해 모듈러에 들렀다. 두 개의 드로잉을 각각의 액자에 담고 그림과 잘 어울리는 색의 종이를 골라 액자 마운팅을 할 계획이다. 선물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준비한 나만의 야심 찬 선물이다. 오늘 하루는 재료를 사느라 낮시간 내내 돌아다녔으니 액자에 맞춰 자르고 끼우기는 내일로 미뤘다. 내일은 액자도 마무리하고 모아둔 선물들 포장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게으르지 말자.
한국에서는 해본 적 없는 선물 러쉬.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한국의 가족들과 해본 적은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가서 등을 달고 오시는 불교이시고 나는 딱히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에겐 그저 공휴일이었던 크리스마스는 굳이 친구들 만나 돌아다니자니 어디에든 사람 많고 붐비는 것이 싫고 평소보다 더 비싼 듯한 식당 가격도 만만치 않아 주로 집에서 티브이 보며 피자 시켜 먹는 날이었다. 그런 내가 점차 배워가는 독일의 크리스마스 문화는 초반에는 로맨틱하고 신기한 별천지였고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명절임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아이들은 신나고 어른들도 신이 나긴 하지만 마냥 신날 수만은 없는 명절.
한국 명절의 준비는 음식이 주된 과제이다. 가족들이 모이고 정해진 명절 음식들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고 반나절 내내 주방에서 지지고 볶는 것이 한국 명절이라면 쿠키를 굽고 요리를 하되 모여 앉아 선물을 주고받으며 풀어보는 것이 독일의 명절인 것이다. 하일릭아반트 Heiligabend라 불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아침부터 장식된 트리밑에 각자가 준비한 선물을 가져다 놓는다. 흔히 보아온 빨간 리본 선물이 가득가득 쌓여있는 모습이 엇비슷하게 만들어진다. 하루 종일 오고 가며 그 선물을 지켜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모두 둘러앉아 선물을 풀어보는 것이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종종 독일가족이어도 간소하게 주고받는 경우도 있는데 혹여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나이의 자녀가 있으면 그래도 꽤나 그럴싸하게 선물을 챙긴다.
수년 전, 전 남자친구의 부모님 집에 크리스마스 초대를 받아 방문했고 거기서부터 나의 당황은 시작되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족들이니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건 당연했고 처음 독일인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라 선물이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친절하게 인사했고 케잌을 나눠먹으며 다가온 선물 교환의 시간에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전 남자친구는 부모님과 두 명의 여동생, 남동생이 있는 나름 큰 가족이었고 나까지 포함해 둘러앉은 사람은 7명이었다. 그리고 선물을 교환하기 시작하는데... 아니, 1인당 6개의 선물을 준비해서 모두에게 하나씩 주고받는 것 아닌가? 나는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모를 애매한 초콜릿선물 하나만 가져갔고 그 하나를 주고 여섯 개를 받아왔다. 낯이 뜨거워졌다. 저녁으로 해먹은 라클렛의 열기로 주방이 후끈했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다.
선물 따위 크게 게의치 않는 무심한 전 남자친구는 괜찮다며 우리도 선물을 준비했다며 당황한 나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얘기했고 그다음 해부터는 나도 바리바리 머릿수대로 선물을 챙겨갔다. 그렇게 남자친구의 가족에게, 혹은 이웃이나 친구, 회사 동료에게 받기만 한 시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언저리에 만나면 으레 작게라도 주는 선물을 몰라서 준비하지 못했던 독일 초보시절이었다. 이제는 12월 중순 이후 만나는 약속은 가능한 모두에게 작은 초콜릿이라도 하나 가져간다. 그리고 24일을 위해서는 일주일 전부터 선물 체크리스트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