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와 같은 행운이 따라야 합니다.
친구 소피아는 며칠 전 거대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산타에게 받은 것은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베를린 민법과 집주인에게 받은 선물이랄까. 약 15년 정도 월세로 살고 있는 그녀는 엊그제 두툼한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건물 주인이 집을 판다고 했고 친구에게 '세입자 우선 매수권 Vorkauftsrecht'이 주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이 기쁜 소식을 널리 알리기 전에 변호사를 먼저 고용하고 조용히 일을 진행하며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넌지시 이야기했다. 세상에, 로또 엇비슷한 것 맞은 거 아닌가?! '세입자 우선 매수권'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부럽고 축하할 일이 당연했다.
'세입자 우선 매수권, 포어카우프레흐트 Vorkaufsrecht'
독일 전역에 있는 법이고 각 주별로 조금씩 추가 적용되는 내용이 다르다. 집주인이 집을 팔고자 할 때 현재 월세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판매 우선권이 주어진다. 세입자가 '저 안 삽니다'하고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혀야지만 그때야 집주인이 공식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집이 명품 가방도 아니고 우선권이 주어진다고 덜컥 살 수 있나?
물론 아니다. 아무리 작은 집이어도 몇억은 하는 금액이니 '세입자 우선 매수권'을 받는다 해도 모두가 집을 사는 것은 아니다. 단, 여러 가지 조건으로 평균 시세의 50% 값으로 제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소피아가 제안받은 판매가격도 역시 놀라운 가격이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Kreuzberg의 중심지역으로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되는 평균가격은 1제곱미터당 6500유로(1100만 원)인데 그녀가 받은 제안서에는 2700유로(460만 원)로 적혀있었다. 현재 시세의 반값도 안 하는 금액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집을 팔 때마다 항상 이런 규칙이 적용하나?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누가 집을 사서 세를 주겠는가? 여러 가지 조건이 부합해야 적용되는 법으로 흔한 경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다.
- 공공 임대주택처럼 나라나 시에 속했던 건물이 사설로 전환되어 일반인에게 판매되는 경우
- 한 명의 주인이 소유한 다세대 건물을 통으로 임대주택으로 운영하다 각 세대별로 개별분양을 할 경우
소피아는 두 번째 경우에 속하는 상황으로 건물주가 쪼개서 개별 분양을 하는 상황이다.
가격은 왜 평균 시세보다 저렴한가?
베를린이라 더 저렴할 수 있다. '주거환경 보호구역 Milieuschutzgebiete'이라는 베를린 특별법이 우선권과 더해져 평균 집값의 반정도만 되는 가격이 된다. 건물주가 건물을 나눠 개별분양을 하고자 할 때 이 '보호지역'안에 있는 건물이라면 의무적으로 먼저 베를린시에 판매해야 한다. 이때 가격은 평균 시세보다 30-60% 낮은 '보호 가격'으로만 판매가 가능하며 그 후 베를린 시에서 기존 세입자에게 집을 구매 후 되팔지 않고 계속 살겠다는 조건을 바탕으로 싼 값에 판매하는 것이다.
베를린 특별법 '주거환경 보호구역 Milieuschutzgebiete'이란?
독일 각 주마다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이 다르게 존재하는데 베를린은 독일에서도 가장 세입자 보호법이 활발하게 되어있다. 또한 베를린 주거지의 약 40% '주거환경 보호구역 Milieuschutzgebiete'에 속한다. 베를린 시에서 집값이 폭등하는 것을 조절하기 위해 이 보호구역을 설정했다. 과거에는 저렴한 지역이었으나 최근 힙한 지역으로 떠올라 집값 상승률이 높은 크로이츠베르크, 프렌츠라우어베르크, 모아빗, 프리드리히사인 등은 거의 포함된다. 항상 인기 있어왔어서 원래부터 딱히 저렴하지 않았던 샬롯텐부르크, 쇼네베르크, 젤렌도르프 등은 제외.
집주인은 굳이 낮은 가격으로 왜 파는 것일까 하겠지만 다 사정이 있지 않을까. 가장 흔하게는 자녀나 조카가 없어 물려줄 사람이 없다면 작게라도 판매하고 현금으로 남은 인생에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피아는 저렴하게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제 만난 그녀는 이미 바쁘기 시작했다.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도 해야 하고 낡고 오래된 집이라 수리 비용을 견적내야하고 변호사와 현명하게 구입하는 절차를 논의하느라 정신없는 연말이 더욱 바빠 보였다. 그 어떤 선물보다 큰 선물을 받았다고 차분히 말하며 들뜨지 않는 소피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