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향이 가득한 나무를 차로 실고 왔다.
크리스마스트리 문화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앞에 쓴 적이 있다. 빠르게는 12월 초부터 준비하는 집도 있지만 늦게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준비하기도 한다. 뭐 트리 장식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 나무 장식에 꽤나 진심인 독일 사람들이다. 마치 한국 추석연휴의 송편과 비슷하달까. 송편을 꼭 빚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챙기는 것처럼. 이왕이면 사 먹는 것보다는 손으로 빚은 송편이 맛있는 것과 같이 크리스마스 나무도 플라스틱보다는 진짜 잣나무인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11월 말이 되면 곳곳에 나무 시장이 선다. 수십 가지의 잘린 잣나무들이 하나씩 그물망에 쌓여 한편에 누워있다. 크기별로 잘 분류되어 마음에 드는 사이즈를 차에 싫어 가져가면 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생 나무시장을 보면서도 늘 신기했고 역시 독일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구나 했었는데 올해는 진짜 나무시장에 다녀왔다. 나는 독일에 살아도 주로 베를린에만 살아서 도시만 알았던 것이다. 세상에, 밤베르크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나무시장에 갔는데 처음엔 시장이 어디인가 두리번거렸다. 나무 시장은 말 그대로 '숲'이었고 듬성듬성 심어진 키 작은 잣나무 숲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고르면 톱을 든 직원이 와서 그 자리에서 잘라주는 시스템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숲을 걸으며 나무를 고르자니 신박하고 웃음이 났다.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던 독일이 또다시 새로웠고 이들의 문화가 한 번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경험이었다.
숲의 입구에서 묻는다. "초록색을 할 거야 파란색을 할 거야?" 그 질문을 듣고 보니 순수한 '초록색'의 잣나무와 은빛이 감도는 청록색 같은 '파란색'의 잣나무 두 종류가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백 개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았지만 그 안에서도 종류가 다른지 처음 알았다. 발터의 가족이 생각보다 작은 나무를 골랐다. 수도 없이 많은 나무 사이를 걸으며 열심히 보고 또 보아 너무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모양에 적당한 밀도로 나뭇가지들이 자라 있는 것으로 정했는다. 그리고 또다시 둘러보고 또 발걸음을 옮겨가며 마음을 바꾸고 이렇게 30분을 잣나무를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나무를 골랐는데 판매원이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우리 말고도 다른 가족들도 직원을 찾고 있었다. 한참 숲을 걸어가다 보니 전기톱을 든 두 명의 직원이 보였다. 두 직원은 우리 나무보다 더 가까이 있던 다른 가족의 나무를 보자마자 긴 대화도 없이 친절하고 빠르게 잘랐다. 그물망으로 포장이 필요하냐 묻고 바로 결제를 도와주었다. 작은 나무를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차 뒷좌석에 가득 찼다. 집안에 들여놓으니 거실을 가득 채웠다. 숲에서는 그렇게 작고 아담해 보이더니 집에 오니 큰 나무가 되었다. 덤으로 주신 잘라진 초록 나뭇가지들로는 벽과 가구 위를 장식하신다고 한다. 오늘은 나무를 사고 장을 보느라 하루가 다 갔으니 내일은 창고에 있는 장식품 박스를 꺼내와 작업을 시작하겠지.
크리스마스의 트리를 꾸미는 것. 잘 알고 있는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온라인에서 주문해 플라스틱나무를 받아 데코레이션을 다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가족 문화였다. 나무를 사러 간 숲에서 만난 다른 가족들과 한참 수다를 하며 동네얘기를 주고받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헤어진다. 혼자 들기 무거운 나무이기에 여럿이 이고 지고 들고 와 거실 한편에 마련된 자리에 나무를 세우면 집안 가득 싱그러운 잣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곳곳에 놓인 버터 쿠키의 향과 붉은색의 굵은 초를 켜고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밤이 가장 길다는 12월 22일이 어두운 줄 모르고 지났다. 드디어 내일부터는 다시 해가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