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노인으로 늙고 싶지만 유연함의 바탕에는 줏대가 있어야 하니까.
영상 3도인데 습도 높은 영상 3도는 너무 춥다. 새벽에는 기온이 더 낮았었는지 아침에 눈뜨니 사뿐사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로맨틱이 전부인 연말인데 추워도 나가야 하는 하얀 날이다. 오늘은 올해 베를린에서 처음 눈이 쌓인 날이었고 2025년도의 마지막 날이었다.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지 않은가. 겹겹이 껴입고 밖을 걸었다. 부지런하게도 눈 치우는 차량이 이미 찻길은 눈을 치워놓았지만 눈 쌓인 나무와 도보는 그런대로 여전히 하얀고 예뻤다. 마흔이 되어도 눈 오는 날이 어떻게 계속 좋을 수 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똑같이 이런 기분이 들까?
되도록 연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나의 애씀과 다르게 머릿속이 꽉 찬다. 올 한 해를 돌아보는 건설적인 마음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사방천지에서 기리는 날이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뤄왔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금쯤은 적당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경계의 시간이다. 식도염의 이유로 한동안 마시지 않았던 와인과 커피를 살살 시작했다. 커피는 그럭저럭 대체커피도 마시고 생강차도 마시며 적당히 잘 조절하고 있는데 추운 겨울의 레드와인은 왜인지 공식처럼 당연스레 마시고 있다. 한창 무알콜을 찬양하며 술 끊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여름과 가을의 내가 우스웠다. 베를린의 겨울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주말을 위해 사두었던 레드와인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집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인 작은 주방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나와 발터는 자연스럽게 와인을 딴다. 오늘이 주말이 아니지만 뭐, 한병 더 사면되는 거니까. 저녁은 먹었고 배는 적당히 불러 안주는 필요 없다. 따뜻한 찻잔은 차를 마시기보다 추운 한기를 데우기 위해 한 손에 쥐고 있다. 매끈한 와인잔은 없는 이 집에서 작은 유리컵에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두 모금 마신다. 어제 들은 팟캐스트얘기, 요즘은 뜸한 친구의 안부, 지난주 만나고 온 가족들의 시시콜콜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다의 시간이 펼쳐진다.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가끔은 용기 내어 묻고 답한다. 적당히 기대와 실망이 공존하고 매우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담긴다.
나는 섣부르게 미래에 대해 계획하지도 희망하지도 않는다. 계획하고는 먼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기대에 따르는 실망이 당연하고 작은 것이라도 버겁다. 되도록 가까운 시간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것으로만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삶이 당연히 그렇게만은 살아지지 않는 것도 잘 안다. 발터는 그런 나를 이미 파악하고 있고 조곤조곤하게 묻는다. 내가 요리조리 돌아가며 답하지 않는 것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내가 혼자 사는 삶이라면 상관없겠지만 파트너와 계획해야 할 것들이 있고 함께 방향을 정해야 할 것들이 있을 때에는 어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라도 마주해야 한다. 설령 상대가 나와는 다른 생각과 방향을 이야기한다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율해 나가야 할지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건강한 것인데 나 때문에 막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나에게 붙는 수식어 '서글서글하고 편안하다'는 표현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스무 살 때에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관계 맺기가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나이 하고는 크게 상관있는 것이 아니었다보다. 나보다 어른의 나이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나보다 한창 어린 친구들도 용감하고 솔직하게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보면 어디 가야 잘 배울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감 있고 자존감 높은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고 나고 자란 가족의 대화방식을 통해 배웠을 수도 있겠지. 나도 어디 가서 매우 잘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평균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늘 관계 맺기에 약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는 것'이 어렵다. 서글서글한 나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늘 적당히 상대방에게 맞추어주는 태도가 굳혀졌고 차츰 나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밖으로 표현하지 않다 보니 나 스스로도 나의 욕구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적당히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내가 편하겠지만 가까이 있는 발터에게는 불편할 것이다. 본인을 위주로 돌아가는 편리함에 따르는 책임도 있을 것이고 파트너와의 동등함을 희망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 가는 모습이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이젠 나에 대해 좀 궁금해졌다. 왜 이게 괜찮고 아무렇지 않을까? 왜 이런 상황에 특별한 호불호가 없는 것일까? 같은 질문을 의도적으로 시작했다. 유연한 노인으로 늙고 싶지만 유연함의 바탕에는 줏대가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