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1월 6일은 크리스마스 장식 정리하는 날

그리스에서는 물 축복 행사가 열리는 날

by 조희진

1월 6일이 되면 비로소 비로소 파티 분위기 가득한 연말연휴가 지나가고 새해의 들뜸이 가라앉은 듯하다. 완벽히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길거리에 버려져있는 크리스마스 나무들이 보인다. 지난번 브런치에 쓴 것처럼 독일은 꽤 많은 집이 진짜 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장식을 하다 보니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이 시기만큼은 길가에 얌전히 나무를 내다 놓으면 청소하시는 분들이 그러려니 여기시고 거둬가주신다. 그렇다면 왜 1월 6일일까? 유럽 안에서도 스페인이나 그리스같이 기독교 문화가 더욱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는 이 날이 전국 공휴일로 크리스마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동쪽에서 별을 따라온 3명의 현자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는 구원의 시작점이 되는 종교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각 유럽의 언어별로 이 날을 다양하게 부른다. 대체적으로 '3명의 왕의 날' 혹은 '동방박사의 날'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아몬드반죽이 들어있는 '갈레트 데 루아'를 먹는데 나는 특히 사과무스가 들어간 버전이 좋아서 직접 만들겠다며 재료도 사다 놓았다. 프랑스와 비슷하게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날 먹는 케이크가 있는데 하나같이 비슷한 전통이 있다. 익히지 않은 딱딱한 콩이나 동전 등 먹을 수 없는 것을 케이크 안에 한 알 밖에 놓고 이걸 발견하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즉, 1월 초 이 케이크를 먹음으로써 작년 12월 초부터 시작한 크리스마스를 기리는 연휴의 날이 마무리된다고 해야 할까? 길고 긴 연휴의 끝이다. 곧, 두어 달 있으면 더 큰 연휴 부활절이 오긴 하지만.


몇 년 전 그리스 아테네로 여행을 갔었고 1월 6일을 그곳에서 겪었다. 혹독한 겨울 피해 온 따뜻한 휴가 중이었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 단, 큰 휴일이라며 왜 상점들이 다 닫았는지 모른 체 불편할 뿐이었는데 여기저기 분주하게 큰 행사들이 진행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그날은 '주 헌 절'로 전통적으로 "물 축복(The Blessing of the Waters)" 의식이 열린다. 낯설면서도 진귀한 풍경을 보며 그리스가 얼마나 정교회가 강한 나라인지 독일이나 프랑스의 서유럽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게 종교가 여전히 큰 힘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 새삼 이국적이었다.


발터와 나는 1월 6일 아테네에서 한 시간 정도 배를 타면 닿을 수 있는 아이기나 Aigina섬의 서쪽항구지역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항구 주변으로 온 동네 섬사람들이 다 모였다. 무슨 일로 사람들이 모이는지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알아듣지 못할 그리스어였다. 단, 수영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설명해 주시는데 누군가 수영을 할 모양인가 보다 싶었다. 우리 또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기다리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무리가 둘로 갈라지며 길이 났고 나이 지긋한 정교회 사제가 등장한다. 꽤나 커다란 몸집에 화려한 자수가 새겨진 종교복을 입고 머리엔 무거운 왕관 같은 것도 썼다. 이 사제는 사람들에게 성수를 뿌려주고 사람들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기도하는 자세로 사제를 따라다녔다.


수영은 누가, 언제 하는 것일까? 궁금해하는데 사제는 한참 동안 배가 들어오는 항구가장자리 높은 곳에 올라가 연설을 한다. 그 연설이 끝날 즈음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십자가를 물에 던졌다. 동시에 사제 주변에서 웃통 벗고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물에 뛰어들었다! 아무리 따뜻한 그리스라지만 겨울은 겨울이고 물은 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뛰어든 것은 사제가 던진 나무 십자가를 물에서 구하면 행운이 따르고 그 지역의 영웅처럼 여겨진다는 전통이 있다.


행사를 마치고 항구에서 내려와 작은 동네입구로 들어가는 사제는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사제가 들고있는 나무 십자가에 입맞춤을 하기 위해 줄을 섰고 정중하고 신성한 표정으로 입맞춤을 성공한 남성을 곧바로 옆에 있던 자신의 딸을 들어 올려 딸에게도 입맞춤의 기회를 주었다. 그는 마치 딸과 가족에게 온 건강과 축복이 이미 확신되었다는 듯이 안도하고 밝은 표정이 되었다.


독일에 오래 살면서 이토록 종교에 진심인 사람들을 접한 지 오래되었다. 기독교가 현재 문화의 기반이 되는 나라이긴 하지만 현대 독일인들은 종교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1년에 교회에 4번 간다는 친구말에 모두들 '그렇게나 자주?'라고 놀래기도 했다. 거기에 내가 '한국은 매주 가는 게 일반적이야'라고 덛붙히니 더욱더 놀라는 건 당연했다. 반면, 사회 시스템 안에는 여전히 종교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교회나 성당은 가지 않아도 아이가 태어나면 세례를 하거나, 동네에 시설이 좋다는 초등학교가 기독교초등학교라면 좋은 시설이 기준이 되어 주저 없이 보내기도 한다. 물론 종교 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 성경책은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 가이드가 된 책이었다. 매번 뜬금없이 휴일이라는데 왜 쉬는 날인 건지, 축일이라는데 누구를 왜 축하하는지 등을 알면 사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자국의 언어를 말하는 것과 문화적 배경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외딴섬처럼 겉돌지 않고 이들과 함께하는 키워드이다.

길가에 덩그러니 누워있다. 사용을 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환경을 고려하면 않좋은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나무는 금방 썪고 테이크아웃 포장은 안썪으니까. 아주 나쁘지는 않을것이다
나무 십자가에 키스하는 언니
또 같은 나무 십자가에 키스하는 어머니. 나는 자꾸 위생이 괜찮을지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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