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회에 필요하다는 '나의 의견 내세우기'
한 달 전쯤 춥다고 너무 움직이지 않는 나를 깨닫고는 안 되겠다 싶어 스포츠 회원권을 끊었다. 요즘 베를린은 다양한 피트니스 앱이 나와있는데 나는 그전에도 사용했었던 익숙한 '얼반 스포츠 클럽( Urban Sports Club)'을 다시 가입했다. 각 멤버십 등급별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루에 한 곳 스포츠클럽의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즉, 부지런하기만 하면 한 달 64유로를 내고 매일 운동을 갈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원화로 계산하니 약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한국에 비해 비싼지 저렴한지 감이 없지만 독일에서는 요가나 수영, 필라테스 등의 수업을 들으려면 '한 당권'과 같은 정기권보다는 참여할 때마다 '1회 비용'을 지불한다. 일반적으로 1회에 15유로 정도 한다고 보면 4번 가는 금액으로 최대 30번까지도 갈 수 있으니 훨씬 이득이기도 하다. 매일까지는 못해도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 좀 더 부지런하면 3번은 가고자 한다. 운동 못 가면 사우나라도 다녀오자라는 심산이다.
1년 중 헬스클럽이 가장 붐비는 시기가 1월 첫째 주와 둘째 주 아닐까. 평소 오던 사람에 의지 가득 품은 새로운 사람들까지 미어터진다. 겨우 비어있는 계단 타는 기계 하나 찾아서 조용히 계단만 타고 왔다. 일명 천국의 계단이라는 그것, 시간대비 빠르게 땀을 가득 흘릴 수 있어서 효율적이다. 2000개 타는데 30분. 숨이 헐떡거리고 속옷까지 땀에 젖는다. 30분 만에 헬스장을 나와 사우나로 향한다. 매우 붐비는 헬스장에 비해 사우나는 한가하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재빠르게 샤워만 하고 나가는데, 나도 그랬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마흔이 도대체 뭐길래 온갖 것을 바꾸어 놓는 걸까. 딱히 나이 앞자리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이라 몇 년 전 사십 대에 들어섰을 때에도 큰 감흥이 없었다. 발터가 구워준 작은 케이크 위에 숫자 40의 초를 꽂았던 것만 기억난다. 그런데 그 이후, 내 몸이 말한다. 나이 앞자릿수가 바뀌었다고. 불혹이 작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들었는데 유혹에는 안 흔들릴지 몰라도 조그마한 움직임에 내 뼈마디가 흔들린다. 어깨가 적당히 올라가다 통증이 생겨 더 이상 높이는 안 올라간다. 무릎도 조금만 뛰어도 통증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무슨 신드롬이라고 했다. 의사가 물리치료 6회 사용권을 써줬다.
그래, 몸이야 쓴 만큼 닳아졌으니 아파오는 게 정상이겠지. 그런데 왜 나의 성향도 바뀌는 것일까. 사실상 호르몬이 전부라는데, 호르몬이 나의 감정과 건강상태까지 모두 컨트롤하고 있는 것일까. 선호하는 옷, 좋아하는 가구 디자인, 자주 가는 카페 등의 취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게 되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혹은 주어진 상황들을 바라보는 내 태도와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 혹은 나도 모르게 달라지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를 기준으로 두는 것. 내 삶에 가장 기본적인 모토 Motto가 되어야 하는 것일 텐데 왜인지 아직도 불편하다. 어른이 계시면 먼저 챙겨야 하고 주변인에게 양보할 수 있어야 하며 나와 함께하는 타인의 감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배웠다. 안타깝게도 내가 나를 알기 전 그 배움이 먼저 시작되었다. 항상 나보다는 내가 있는 상황의 분위기, 타인의 편안함이 늘 우선시 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뜰히 챙기는 성미가 아니라 눈치가 빠른 편은 못되었으나 나를 감싸는 공기의 감은 기가 막히게 읽었다. 다행인 건 숫기 없는 성격에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그 공기 속에 가만히 있을 뿐 먼저 나서지는 못했다.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눈치'는 부족하고 독일사회에 필요하다는 '나의 의견 내세우기'도 형편없다. 독일에 살고 있고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 살 예정이니 '나의 의견 내세우기'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내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에도 매우 오래 걸린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모를 '나'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아무리 해도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데 몸뚱이는 30분 동안 계단 2000개 오르면 흥건히 땀나니 훨씬 효율적이다. 에너지를 쓴 만큼 반응이 눈에 보이니 말이다. 추워도 굳이 운동화에 사우나 타월에 바리바리 챙겨나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