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을 흥미로운 나라의 언어로 새겼습니다.
며칠 전 스레드에 헬스장에서 만난 백인 언니의 한글 문신 사진을 올리고 세상 처음 보는 많은 숫자의 라이크를 받았다. 운동 끝나고 옷을 갈아입는데 옆에 언니의 하얀 발목에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궁서체로 쓰인 '오만과 편견'. 독일 헬스장에서 한글 문신을 보기도 드문 일일 텐데 내가 한창 애정하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니! 반쯤은 벗고 반쯤은 속옷을 입은 상태로 말을 걸었다. 사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아무 말없이 찍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한국어 타투를 보고 반갑게 말을 걸었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하니, 오히려 나에게 이 타투가 맞게 된 거냐고 되물었다. 자기가 확신이 없었는데 한국인이 알아봐 주니 다행이라며 문신에 대해 소개한다. 자신의 몸에는 여러 가지 작은 문신들이 있는데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되어있다고 했다. '오만과 편견'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고 한국에 여행을 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좋아하는 소설을 한국어로 새겼다는 생각보다 심플한 스토리가 담겨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신고 있던 양말까지 반쯤 벗어주었고 그 사진이 수많은 사람에게 라이크를 받은 것이다.
스레드는 사진 없이 글만 올려도 되는 공간이다. 주로 짧은 글로 대화처럼 이어지고 알고리즘이 아주 강하게 적용되어 내가 자주 보는 주제, 자주 대화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내 계정이 퍼져나간다. '오만과 편견'문신 글에는 댓글도 수십 개가 달렸는데 온갖 나라에서 본 외국인이 한 한글 문신이야기는 다 나온 것 같다. 그보다 더 많은 댓글이 이 한글의 서체가 궁서체여서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올드한 궁서체로 쓰여서 덜 예쁘다는 뜻 같기도 했고 동네 고깃집이 생각난다며 진부한 디자인을 딱하게 여기는 글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문신의 주인은 한글에 여러 가지 폰트가 있는지에는 관심도 없었을 거다. 혹여 촌스러운 옛날식 글씨체라 한들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아랍어를 보면서 옛날식 서체라느니 요즘 힙한 글씨체라는 니 해도 아무 감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 눈에는 읽을 수도 없는 한글은 알파벳이 아닌 낯선 철자로써 그림처럼 혹은 모형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국인이야 여러 고깃집 간판이나 옛날 출판물을 본 적이 있어 궁서체라느니 옛날식이라느니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온전히 우리의 경험을 통해 쌓인 배경지식이 있어서 가능한 사고였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댓글은, 나름의 스토리가 담긴 궁서체의 '오만과 편견'이지만 한국인 눈에는 재미있게 읽히는 상황을 인지한 이들의 댓글이었다. 앞으로 영어나 타 언어로 레터링 문신은 안 하겠다는 내용으로 원어민들이 보면 본인도 모르게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이 된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추가로 다리의 모양을 언급하는 외모비하 발언적 불편한 댓글들도 있었는데 겉모습을 판단하는 게 익숙한지 본인이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짧은 말을 주고받는 공간이지만 몇 줄만으로도 사람들이 평소에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과 태도가 아주 조금은 묻어나는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동시에 내 댓글들도 다 나를 알게 모르게 표현하고 있었겠지 싶어 내 계정을 훑어보기도 했다. '어'다르고 '아'다르다는 말에서 처럼 목소리도 없고 톤도 없는 글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말하듯이' 글을 쓰다 보면 참 쉽게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긴 글보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대화가 나도 모르게 내 본성을 훨씬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