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사람들이 데이트 하는 법

만약 뉴욕에서 이렇게 데이트하잖아? 사람들은 네가 노숙자인 줄 알 거야

by 조희진

한창 스레드라는 새로운 SNS를 시작했을 때 신세계였다. 유튜브도 안 보고 인스타그램이나 더 과거로는 페이스북에 큰 흥미가 없는 나였다. 그런데 글자 몇 줄로 간단히 남기는 스레드는 사진보다 텍스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노렸나 보다. 안타깝게도 스레드를 알기 전보다 지금은 핸드폰을 더 오래 쥐고 있다. 스레드는 특히 알고리즘이 무섭게 작용한다. 몇 마디 쓰지 않아도 곧 나 같은 사람들만 쏙쏙 모아놓아서 앱을 켜자마자 내가 알 것만 같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인다.


그들은 대부분 해외에 살고 있고 내 또래이다. 그것도 미국이나 다른 지역이 아닌 내가 사는 서유럽근교인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 살아 슈퍼마켓에서 장본얘기만 해도 그럭저럭 알아듣고 공감할 수 있다. 베를린 얘기를 종종 하다 보니 주로 베를린 사는 사람들도, 베를린에 관한 글도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서 데이트하는 것 참 흥미로워, 그저 만나서 산책하거나, 편의점 앞에서 맥주 마시며 데이트를 해.

만약 뉴욕에서 이렇게 데이트하잖아? 그럼 사람들은 네가 노숙자인 줄 알 거야"


조용한 저녁에 이 글을 읽고 소리 내서 웃었다. 뉴욕은 안 가봐서 모르지만 적어도 베를린의 데이트는 맞는 말이었다. 특히 첫 데이트는 더더욱 그렇다. 서로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알기 전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느 식당을 가야 하는지 등을 고민할 필요 없이 산책을 하는 것이다. 날씨가 좋다면 공원이나 호숫가를 거닌다. 야외는 실내보다 덜 사적이다. 적당히 서로 간의 거리도 유지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탄하며 대화 주제를 적절히 바꾸기도 좋다. 길 가다 종류별로 맥주를 파는 슈페티(Späti, 편의점)가 나온다면 맥주나 레모네이드 한 병씩 손에 쥐고 거니는 것이다.


겨울이 긴 베를린이지만 그 겨울을 버텨내면 천국의 시간이 주어진다. 어제보다 5도 정도 기온이 낮아진 오늘 아침만 해도 창문 열고 들이마신 공기가 훨씬 포근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을 버텨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이렇게 몇 주가 더 지나면 서늘한 공기에 봄냄새나는 시간이 오겠지. 그런 날은 매일 보는 얼굴의 파트너와 밖으로 나가 걸어도 새로운 데이트 같은 시간이다. 저 베를린 산책 데이트의 글아래 이게 정말 사실인지 놀라는 댓글과 식당이나 근사한 장소를 예약하지 않아 '노력 없음'으로 취급하는 글이 많았다. 베를린의 봄과 여름을 겪어본다면 산책하는 데이트가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함이 아님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지.


한두 번 만나고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던 수많은 나의 데이트 상대들 얼굴은 기억이 안 난다. 그렇지만 낯설고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던 공원의 풍경은 마음에 남았다. 사실 첫 데이트의 가장 큰 기쁨은 나 스스로가 설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그렇기에 몇 년이 지나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날 나를 감싸던 설렘과 풋풋한 감정뿐이다. 근사한 카페에서 어색하게 마주 앉아있는 것보다 옆으로는 자전거도 지나가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주변도 살피며 상대에게 적당히 집중하고 적당히 모른 척하는 그런 데이트가 자연스러운 베를린이 오늘도 좋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카날, 데이트 하는 사람들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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