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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pr 07. 2024

혼자 있을 때 아프지 맙시다

월요일 아침, 부스럭거리는 애인의 기척에 일찍 눈을 떴는데 왼쪽 가슴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는 듯이 저릿한 통증이었다. 2초 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강한 압력은 잠잠해지나 싶기 무섭게 다시 시작됐고, 당황한 나는 온 감각을 심장에 집중하며 가만히 눈을 꿈뻑이고만 있었다.


"잠 아직 덜 깼지? 좀 더 자."

서울까지 먼 출근길에 오를 채비를 마친 애인이 어느새 곁에 와서 말을 건다. 이게 단순한 근육통인지 아니면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같은 심장질환인지를 가늠해 보던 난, 몸이 이상하다고 말해야 하나 약간 망설였다. 죽을 만큼 괴롭진 않은 걸 봐선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음을 놓기엔 하필 아픈 곳이 심장이었다. 반듯하게 누운 몸을 애인을 향해 돌리려던 찰나, 왼팔의 움직임을 따라 잠잠했던 통증이 다시 강하게 느껴졌다. "아악..!"


자초지종을 듣고선 구급차를 부르려던 그를 만류는 대신 가장 부지런하게 문을 여는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응급실에 온다는 두 부류X발 이걸로 왜 이 시간에 오세요와 씨X 이걸 왜 이 시간까지 참으셨어요― 중 전자에 해당할 것만 같아서였다. 응급실은 아니지만 심장내과 전문의가 있다는 그 병원(정확히는 의원)은 무려 오전 8시부터 문을 열었다. "별거 아닐 거야. 병원 갔다가 출근해야 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흉통에도 가방을 챙기는 꼴이 영락없는 K 직장인. 쌓인 일을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가도 출근도 미루고 병원엘 쫓아오는 커다란 사람에 시선이 닿자 긴장이 좀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가방을 빼앗아 드는 손에도 그저 짐을 내맡기고는 털레털레 택시에 몸을 집어넣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피도 뽑고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심전도와 초음파까지 봤지만 다행히 결과는 이상 없음. 그렇다면 선생님 이 통증은 뭔가요? 의사 선생님도 원인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근육통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겠지, 어쨌든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아주' 건강한 심장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면서. 정말 잠을 잘못 자서 근육이 놀란 걸까?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도 심장이 아플 수 있다던데, 요 며칠 밥을 먹고 바로 뻗어버렸기 때문인 걸까? 이유는 몰라도 둔한 내게 몸이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정말 뭔가가 잘못되고 있었다면, 그런 와중에 애인도 옆에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봤다. 구급차를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 쓰러져버렸겠지. 이 의료대란 사태에 제때 병원에 갈 수는 있었을까. 아니 병원에 가기도 전에 놀라고 서러워서 어딘가 잘못됐을 거야. "1인 가구이니까 건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선배들의 당부는 얼마나 귀한 말들이었나. 절망으로 가득한 상상의 나래 속에서 늦을 대로 늦은 출근길에 쉽게 발을 떼지 못하던 사람이, 자다가 아플까 봐 걱정된다며 퇴근 후 다시 내려와 밤을 지켜주던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아 정말이지 혼자 있을 때 아픈 게 아니라 다행이다. 앞으로는 아픈 걸 최대한 참고 미뤄 애인이 곁에 있을 때만 아파야겠다. 그의 옆에서 엄살을 있는 대로 부리는 동안 가슴을 무겁게 누르던 감각도 천천히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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