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를 썰듯 시간을 자른다면 세 개의 뭉툭한 덩어리가 될 것이다. 언제고 난 가장 왼쪽에 있는 걸 먼저 집어들 것이다. 과거.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모든 순간. 내게 중요한 많은 게 그대로 멈춰있는 곳.
길게 보면 인생은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적어도 그렇게 믿으며 그렇게 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바람대로 아직까지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을 감히 기대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다만 딱 하나, 이런 낙관이 잘 안 되는 게 있다면 과거의 인연에 대해서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난 일, 만나지 않은 일, 떠난 일, 그러지 못한 일들은 자주 오늘의 행복을 의심하게 하고 닿을 수 없는 과거로 과거를 나를 끌어당기곤 한다.
과거는 완성형이고, 그래서 불가항력이다. 지나간 시간의 뒤에서 후회 같은 걸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다는 의미다. 고치려 애쓰다 망가져버린 무수한 관계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선택에 대해 자주 곱씹게 되는 건, 잘 작별하지 못한 인연을 놓아주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도 전생이라면 우린 이미 다음 생애 다른 인연이 아닐까?"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속 해성의 대사가 긴 여운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인연을 잘 놓아주는 법에 대한 섬세한 텍스트라서. 시간은 일직선이 아닐 수도 있고, 세 개가 아닌 여러 층위일 수도 있으며,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미래를, 그 시간에서라면 달랐을 어떤 인연에 대해서도 그려볼 수 있다는 것.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영화의 장면을 보면서, 해성의 그다음 대사를 따라 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