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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Sep 15. 2024

사랑의 온도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애인과 난 일주일에 한 번은 얼굴을 봤다. 일주일에 한 번. 아주 통념적인 데이트 주기지만 직업상 야근과 저녁 모임이 잦은 장거리 연인에게는 아무래도 벅찰 수밖에 없었다. 애인은 몰라도 체력이 대단한 편이 아닌 내겐 좀 그랬다. 그런데도 약속 한 번도 깨지 않았던 건 주로 애인이 위해 주말마다 세종으로 내려와 줬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마음이 고마워 친구, 가족과의 약속을 조정하거나 1박 2일 여행을 전후해 잠깐이라도 그를 보러 서울에 가 했다.


피차 피곤하고 바쁜 처지라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애인이 이 최소한의 주기가 지켜지길 바랐다. 보고 싶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우리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자 의식이라고 그는 믿는 눈치였다. 그런 행동들이 그에겐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잠들기 직전 졸음을 꾹꾹 참는 잠긴 목소리로 전화한다거나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맹렬하게 싸우다가도 "그래도 사랑해"라고 말하는 습관들이 그랬다. 화해를 하기도 전에, 주로 화를 내는 쪽인 내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전에 들려오는 그 말에 나는 한 번도 화답해 준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와? 어이없어.. 그런데도 그는 늘 자기만의 방식대로 꿋꿋해 지기 싫어하는 나를 두 손 두 발 들게 한다.


어쩌면 나는 사랑한다는 단순한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애인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네가 밉다"면서 위악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달래지지 않는 어떤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그걸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말이다. 언젠가 애인은 최근의 내가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고 했다.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거나 손을 잡고 걸을 때조차 쉬지 않고 손장난을 하던 연애초의 습관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나는 괜히 그 말을 반박했지만 애인을 만나면서 내가 안정돼가고 있다는 것쯤은 스스로눈치채고 있었다. 그 변화의 이유란 내가 하나의 사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하고 있는 사랑이 열정과 충동이 아닌, 이 관계를 지키려는 의지를 동력으로 한다는 것. 화가 많은 내가 별 거 아닌 이유로 언성을 높이더라도 미안하다고 하는 쪽은 늘 애인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떤 사과는 내가 잘못하고 니가 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법이었다. 애인은 나보다도 그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애인은 지금 해외 출장으로  동안 한국을 떠나 있다. 처음으로 우리의 약속이 깨어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주일 넘게 이 사람과 떨어져야 한단 게 실감 날 무렵에는 괜히 슬퍼져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세 달도 아니고 삼 년도 아니고 삼주인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참 새삼스럽다. 여섯 시간의 시차를 건너 우리는 매일같이 나의 새벽과 그의 밤을 서로 나눈다. 지지직 거리는 인터넷 탓에 버벅거리는 영상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시간을 앞당기고 자는 시간을 뒤로 미루면서. 허전하고 울적하던 마음은 잠깐뿐이다. 다른 무엇이 아닌 이런 마음가짐을 믿는 한 무엇도 불안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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