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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YOLO, 올해는 소확행

크래프트맥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입니다.

by 고첼

이번 주말에는 느낌이 사뭇 다른 서울의 핫플레이스 두 곳을 다녀왔습니다.

토요일에는 신사동의 가로수길과 일요일에는 망원동의 망리단길.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절묘하게도 가로수길은 토요일을 닮았고, 망원동은 일요일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로수길은 내일의 여유가 남아 있듯이, 오늘은 조금 사치를 부려도 될 것 같은 느낌의 토요일.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내게 주어진 오늘만큼은 만끽 해야만 할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반면, 망원동은 일요일의 오후 같습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지만 아직은 남아있는 여유를 소탈하게 즐기고 싶은 감성이 흘러 넘칩니다. 일요일 저녁거리를 살 수 있는 전통 시장을 비롯해서 전반적인 물가가 저렴한 것이, 마치 월요일로 넘어가는 일요일의 부담을 줄여 주려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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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네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닮아 보이는 것 같다는 제 망상은 작년에 유행했던 YOLO와 올해 트렌드인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가로수길은 4~5년 전에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 이었고, 망원동은 최근 들어서 인기가 높아진 장소네요.

어떤 흐름이 분명히 변하고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정적이고 대사도 별로 없으며 그 흔한 키스신 하나 없는 청춘영화였습니다. 처음에 이런 영화를 누가 보냐는 생각이 가득차 있는 상태로 극장에 들어섰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제 마음 한 켠에 공기청정기를 강풍으로 틀어 놓은 것 마냥 마음이 뽀송해지고 맑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성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인기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 영화와 비슷한 예능이 몇 개 있는데, ‘효리네 민박집’이나 ‘윤식당’등이 그것입니다. 특별히 웃기지도 않고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나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닌 이런 예능프로그램이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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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포레스트’, ‘효리네 민박집’, ‘윤식당’ 그리고 망원동의 공통점은 바로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공감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반증은 아닐까요? 아니, 공감을 하지 못 하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도, 느낄 필요도 없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나와는 동떨어진 것들에 대한 동경을 하기에도 이미 우리는 너무 지쳐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대단한 삶을 바란 것도 아닌데, 그냥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힘이 들고 미래는 캄캄한 것일까요.. 그렇다고 리틀포레스트의 류준열처럼 귀농을 할 용기도, 이효리처럼 돈이 많은 것도, 윤식당처럼 외국에다가 식당을 차려줄 방송국도 없는데.. 뭔가 모르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그들이 너무너무 부럽게만 느껴집니다. 이글을 쓰면서, 저도 요즘은 확실히 소확행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토요일에 갔던 가로수길 보다도 비록 월요일을 마중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요일이었지만, 망원동에서 느꼈던 소박함에 더욱 끌리게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런 추세라면, 불금, 불토라는 단어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부담이 되면 안되니까요, 오늘의 쾌락을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불 싸지르는 YOLO말고 오늘도 내일도 부담이 없는, 각자만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길 줄 알게 된다면 월요병이란 말도, 불금, 불토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내일 월요일 출근이 몇 시간 남지 않았네요. 한주의 마지막 소확행을 실천해 볼 요량으로 오늘 낮에 망원동에 있는 작은 크래프트맥주 샵에서 구입한 수제맥주 한잔 마시고 내일을 맞이 해야겠습니다.

ALLOWTO_PHOTO_20180409175146_STANDARD.jpg 맥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입니다.

와.. 행복하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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