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같이
면허를 딴 이후 오래간 잡아보지 못했던 운전대를 잡고 빈 공터를 빙빙 돌았다. 예술가 친구는 쉽고도 직관적으로 운전하는 법을 알려줬다. 글자로 익힌 운전보다 몇 백배는 쉬운 느낌이었다. 지나가다 들어간 빈티지 옷가게에서 편한 옷을 찾겠다고 온갖 옷을 골라 입다가 결국 불편하고 야리꾸리한 옷을 샀다. 왜 내 몸에 맞는 옷은 그토록 불편한지.
어두워진 밤, 한산한 해변에 수제 막걸리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친구는 속옷바람이었다. 그녀는 자유롭다. 누군가의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모두 벗어던지고 뛰어든다. 의도에 맞는 복장을 입기를 좋아하거나 물건이나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참기 어려워하던 나도 결국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바다에 뛰어들고 모래에 뒹굴었다. 배 위에 모래를 쌓기도 하고 별을 세기도 했다. 밤하늘에는 폭죽이 터졌다. 우리 이외에 한 명의 남자가 혼자 담배를 피우고 오리 튜브를 타고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웃기도 했다.
친구는 야한 농담을 했다. 모래밭에서 뒹굴면 어떨 거 같아? 신나게 자지러졌다. 삶의 의미에 대한 대화를 했다. 삶을 온몸으로 즐기고 삶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누니 시간이 휙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왜 우리가 삶의 의미를 그토록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지 갑자기 의아해졌다.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삶인데. 살아있음인데.
최근 이렇게 순수하게 과정을 즐겼던 때가 있었던가? 빠른 전개의 소설 읽기에 몰입할 때, 영화에 빠져들 때,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릴 때. 자전거나 수영.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목표 없이 그저 '하고 싶다'는 이유로 과정에 몰입하는 무언가는 나를 늘 아이로 만들었다. 과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와 같을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어린아이들은 자기 선택의 주인이다. 주인으로 행동한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자기가 선택한 것에 몰입하고 있다. 그리고 순수하게 즐거워한다. 모든 것에서 재미나 유머를 찾아내고 까르르 웃는다.
창의성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들을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원해서 하는 것들. 과정을 즐기게 되는 것들. 어릴 때는 나뭇가지를 관찰하거나 모래만 만지며 놀아도 시간 가는 줄 몰랐지 않나. 어른이 된 이후에도 모래를 만질 시간이나 자연을 세세하게 관찰할 시간은 있는 것을.
어린아이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연스레 자유와 함께 책임도 따른다. 그러나 책임감과 의무에 둘러싸일 때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놀이다. '일'마저 내가 선택한 역할놀이가 될 수도 있다. 아이 때는 반에서 시키는 역할 분배에도 적극적이지 않나.
요리, 산책, 정처 없이 떠돌기, 미친 척 노래 부르고 춤추기, 친구와 역할극 하기, 떠올려보지 못한 웃기고 정신없는 일들을 해본다. 그렇게 아이의 눈을 되찾게 되었을 때 영혼 없이 하던 모든 일들에 생기가 돈다. 소원해진 관계에 생동감이 든다. 삶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아이의 눈은 그렇다. 어린아이들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삶으로 존재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이처럼 밤바다에 뛰어드는 일 같다. 그저 생동하게 존재하는 것 말이다!
#어른이들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