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최근 읽은 《관내 여행자 되기》 (열린책들) 책 속 이런 문구가 나온다.
‘가지 못하는 공간이야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문장이 머릿속 기억을 실처럼 꿰이듯 관통해서 한동안 더 나아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덮었다.
내가 최초로 ‘집’이라 감각한 장소는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빌라의 1.5층 집이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한때 부모님, 외조모, 막내 이모, 동생과 나까지 여섯이 몸을 부대끼고 살았다. 막내 이모가 분가하고 나서 몇 년 더 그곳에서 외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며 지냈다.
그 집은 내 유년 시절 기억의 거의 전부를 갖고 있는데, 공간이 좁은데도 기이하게 무언가를 숨길 곳이 많아서 구석마다 내 추억을 층층이 쌓아 두었다. 그 작은 집에 가장 많았던 건 바퀴벌레와 책이었다. 나는 문자를 읽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던 시점부터 안방 책장에서 책을 발굴해 냈다. 부모님조차 있는 줄도 몰랐던 걸 꺼내서 읽다, 머리맡에 쌓다 보니 나중엔 책더미가 그 자체로 벽이 되었다.
빌라를 나서면 북한산 꼭대기까지 굽이굽이 계단이 이어지는 골목의 판잣집, 무당집, 주거지와 상점의 구분이 모호하나 ‘마트’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슈퍼마켓들이 석류알처럼 다다닥 붙어있었다. 그곳에 살던 친구들과 산꼭대기 집에 놀러 가던지, 산 중턱에 있는 놀이터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걸 볼 정도로 신나게 그네를 타던지, ‘탐험’이라는 명목하에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 두 칸 가진 집이 손에 꼽던 그 동네는 한 틈의 여유도 없이 다들 끼인 채로 살았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음험한 구석이 눈에 띄었다. 몇 년째 인적이 없는 폐가, 성인 한 명 드나들 정도로 좁은 골목 등 그런 곳을 두고 친구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놀았다. 어린 친구들과 나는 골목길 위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소꿉놀이하며 참 오래, 즐거이 동네를 누볐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그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땅 째로 갈리기 전까지.
아직도 그 동네를 떠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매일 같이 인사하고 지내던 슈퍼마켓, 방앗간, 피아노 학원 모두 사라지고 동네 자체가 폐허가 되었다. 건설사와 시청의 강압에 못 이겨 동네 주민의 80% 이상이 떠나고, 우리도 부랴부랴 이삿짐 트럭을 막 보낸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이 천천히 동네를 걸어 내려가며 집들을 살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늘 사람 한두 명은 마주쳤던 언덕길은 공허했고, 동네의 터줏대감 같던 미용실만이 영업 팻말을 달고 있었다. 미용실 원장님은 입구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부채질하고 계셨다. 우리 부모님은 그 분께 마지막 인사를 하며 ’나가실 생각이 있냐‘고 물었고, 그분은 약간 얼굴에 조소를 띄우며 ‘버틸 때까지 버틴다’라고 답했다. 그 당시엔 버틴다는 말도, 주택가가 통째로 폐허가 되었는데도 버티겠다는 이유도, 그분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 숙여 인사하고 떠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습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 깊숙이 남아있다. 살다 보니 원장님이 지었던 조소는 존중과 이해도 없는 그릇된 운명을 온몸으로 부딪히는 사람이 강한 의지 속에 힘겨움을 삼키기 위해 덧씌우는 포장지 같은 거라는 걸 깨달았다.
장소가 곧 삶이 되는지라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든 매번 그 배경을 녹번동 산자락 동네와 비슷한 곳으로 상상한다. 영, 원, 한 모두 살고 있는 계단 꼭대기 집도 그렇다. 세상의 기준엔 풍족하지 않고, 둘 셋이 살려면 물건부터 감정까지 마구 뒤섞이고야 마는 수준의 집. 그런 곳에 살며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어쩌다 세상의 부조리까지 덧입은 사람들. 때론 분노하고, 피곤하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의 사정을 쓰고 싶었고 어느 순간 내가 그런 이야기밖에 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 미용실 원장님처럼 떠날 수 없어 삶의 방식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내 안을 맴맴 돈다.
등장인물의 많은 요소는 가족과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했다.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는지 말하자면 마치 가족의 과거도 들춰내는 것 같아 낱낱이 밝히지 못하겠다. 그랬기에 영, 원, 한 모두 나한텐 실존하는 인물이나 다름없게 느껴졌고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쓰고나선 이 이야기가 끝난 게 너무 섭섭했다. 꼭 내 손으로 아주 친한 친구들과 절교한 느낌이었다.
《원의 자리》 를 완결 가까이 쓰고 있던 어느 날, 애인과 통화를 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꾸 글을 쓸 때 SF나 판타지 요소를 집어넣는 이유는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 사람에게 글 자체가 흉기가 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거라고. 독특한 존재, 세계관이 완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원의 자리》 속 내용을 보다 현실처럼 묘사한다면 쓰는 나도 괴로워서 중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게으르게 글을 쓴 셈이다. 아직은 이 게으름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다. 당분간은 새로운 소설을 써도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구성할 것 같다.
지금은 부촌 아파트로 변모하여, 내가 살던 동네의 흔적은 그 빌라 입구로 이어지는 돌계단 앞에 있던 가로등뿐이다. 녹번동 일대를 향한 그리움이 기억의 멍이 되었다. 상상할 수밖에 없는 그곳과 소설 속 등장인물로서 직접 만나볼 수는 없는 영, 원, 한이 참 닮았다. 그렇지만 셋의 이야기는 이렇게 긴 글로 남았고, 언제든 찾아 읽을 수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의 완결 그 자체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