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리
영은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었다. 원의 모든 단어의 사이마저 야속했다. 그사이에 어떻게든 내 영혼을 욱여넣어, 원의 모든 생에 단 한 톨의 홀로됨도 없기를 바랐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원을 안고 싶었고, 무엇이든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동시에 어떤 것이든 해주고 싶었다. 뒤로 갈수록 불안한 심리와 대비되게 곧은 글씨체는, 생의 바닥에 몸져누워있던 그가 유일하게 의지로 행한 것이 편지 쓰기였음을 알려줬다. 발을 내디디면 몸이 가루가 되어 날아갈 것처럼 무기력하던 원이 오랜만에 마음먹고 나간 곳이 행진이나 시위였다. 그는 옳은 일이라면 했다. 대단한 사명감으로 죽을 결심을 했음에도 거리로 나간 게 아니라 그저 그게 옳은 일이라서, 옳은 일에도 지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나섰다. 하지만 원은 꼭 받고 싶었던 영의 답장을 볼 수 없었다. 영은 마지막 편지에 세 번 답장하고 나서야 나를 찾아왔다. 그가 우리 집 현관을 열고 들어왔을 때, 성큼 집의 한복판으로 진입했을 때, 그를 보고 넋이 나간 내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짧게 신음했을 때, 원은 그보다 더 실재하는 고통을 원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심장이 욱신거리고, 코가 아프고, 눈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느낌. 말문이 막히고 온몸이 무너지는 충격. 눈물을 쏟아내고만 싶은 충동. 영은 인간이 우는 모습을 강렬히 원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가늠했다. 원이 누빌 수 있었던 삶의 크기와 정반대의 작은 박스에 담긴 그의 물건을 보며, 영은 잠시 자신의 배터리를 분리하고 세상으로부터 단절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원의 박스를 끌어안고 투명해지는 내가 있었다.
원이를 원망한 적 없어?
영은 내 옆에서 잠들지 않은 밤마다 아주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원의 유언대로 그의 기억을 자신에게 심고, 원이 되어 나를 보살피는 게 맞을지. 데이터가 된 기억이 유실되거나 손상되지 않은 채 새 생명을 얻는 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나비효과의 끝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침잠하는 정신을 길어올리느라 그는 새벽 내내 충전기를 연결해야 할 정도였다. 몇 날 며칠을 골몰해도 도달하지 않는 정답에 지쳤을 때쯤, 몸이 말라 표정까지 앙상해진 내 모습을 보고 영은 고민하는 걸 그만두었다.
한을 잘 돌봐줘.
영은 답을 알 수 없다면 직접 직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심기로 결심한 영은 내게 원의 기억을 달라고 물었고, 혼절할 듯 분노하는 나를 끌어안고 주저앉지 않도록 지탱했다. 영은 닥치는 대로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느라 흔들리는 내 몸의 진동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철갑 같은 방패로 학생과 어른을 밀치고 구석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경찰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언젠가 자신도 이렇게 분노했어야 한다고, 이런 방식일 수 있었다면 원과 한은 더 긴 사랑을 했을 테고,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겠다고 잠시 상상했다. 그래서 영은 강하게 결심을 굳혔다. 그가 원의 기억을 스스로 심은 건 그게 원의 유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실된 미래의 가능성을 붙잡고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었다고 말했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면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온기가 피부를 감싸는 계절이 올 때에도 영은 매번 나를 데리러 왔다. 원의 편지를 모두 읽고, 영의 어깨에 매달려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그날 우리는 새벽까지 원의 이야기를 했다. 영이 알았던 원, 내가 알았던 원의 교차점을 찾을 때마다 오랜만에 뱃속까지 꽉 차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그래야만 했다는 듯 한참을 울고 나니 이상하게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의 할당량을 채운 거라고 영이 농담했다.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 새벽을 지난 우리는 당연한 일상을 살았다. 함께 지내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리고, 아무 대화를 맥락 없이 나눴다. 나는 때때로 모질 정도로 원칙을 지키고 싶어 하는 영에게 짜증을 부렸다. 영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그의 생각을 되묻는 내게 대꾸하는 걸 거부했다. 우리는 싸우지 않고 서로를 할퀴어댔다. 할퀸 자리에서 발견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걸 즐겼다. 영과 어울리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어느 퇴근길, 살면서 단 한 번도 ‘실수로’ 고꾸라져본 적 없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나를 못 이긴 영이 한숨을 내쉬곤 느닷없이 인도 끝까지 전력 질주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엉성하게 뒤쫓았다. 저 멀리 영의 머리칼이 출렁대는 걸 보며 웃음이 터졌다. 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너무 웃겨서 더는 뛸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멈춘 나는 길거리에서 마구 웃었다. 한참을 뛰어간 영은 건널목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웃느라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멈춰있자 결국 다시 돌아왔다.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보며 영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라고 영이 묻자마자 다시 웃음이 터졌다. 거기서 그렇게 뛰어가는 사람이 어딨어. 내 대답에 영은 코웃음을 쳤다. 대답하기 싫은데 자꾸 묻는 게 지겨워서 그랬다, 왜. 냉소를 띤 영의 팔을 잡고 겨우 폭소를 갈무리한 후 그에게 물었다.
“원은 우리가 친해지기 엄청 오래 걸릴 거라고 했는데. 걔 진짜 모르는 게 없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네가 이렇게 질려서 날 버리고 뛰쳐나갈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몇 년 만에 알았잖아.“
”원이를 끼고 우리가 만났으면, 영영 몰랐을 수도 있어.“
“왜?”
“서로를 알아가려고 이만큼 노력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네.” 천천히 걸음을 떼며 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너를 내심 좋아했을 거야.”
“그건 나도 그래.”
버스 정류장부터 집까지 돌아오는 길, 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하나의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원과 내가 데이트했던 곳, 우리가 자주 싸웠던 카페에서 나는 원이 내 눈치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영의 입을 빌어 듣고 보니 원은 그때 날 원망했다. 내가 맛있다고 데려간 빵집이 실은 원의 입에 맞지 않았거나, 내가 싫어하는 노래를 자주 튼다는 이유로 기피했던 LP바를 실은 원이 종종 혼자 다녀왔었던 것. 머리를 망치고 기분이 안 좋은 나를 위해 서울 시내 마트를 다 돌아다니며 내가 꼭 먹고 싶어 했던 과일을 찾았던 것.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이 된다면 직접 방문하기도 하며 우리는 원이 주고 간 기억을 선물처럼 열어 보았다.
우울 세계에 접속하기 전, 원은 더없이 활기찼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나를 데리고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 했다. 나를 따라 동아리에 들어왔던 원은 어느새 자신만의 영역과 친구를 개척하며, 처음 보는 세상에 뛰어드는 데 거침없었다. 반대로 원은 달에 한 번은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죽은 듯이 지내는 시간을 꼭 필요로 했는데, 그 정도는 흠결도 아니었다.
자주 실수하고 금방 넘어졌다. 그치만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드시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영은 그가 일기 쓰기를 돕던 때를 회상하며 매일 모든 감정을 체험하기 위해 삶을 사는 사람 같았다고 표현했다. 영의 관점에서 원은 늘 자신을 이끄는 친구였고, 어깨에 진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움직이려고 시도하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 같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표현을 두고두고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공장에서 액추에이터를 포장할 때도, 멸균 식품 같은 점심을 먹다가도, 절전 모드에 들어가 웅웅대는 영의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기 직전에도 떠올렸다. 등 뒤에 안드로이드를 한 트럭 싣고 리어카처럼 끌고 가려고 낑낑거리는 원의 얼굴을 상상했다. 만약 내가 그를 부른다면, 원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았다. 입을 활짝 벌려 웃는 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 애가 보고 싶어, 핸드폰을 켜고 SNS에 올렸던 아주 오랜 우리 둘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오동통한 볼살이 한껏 솟을 정도로 웃던 사람. 어두운 방 안에서 원의 미소가 담긴 사진만이 빛났다. 문득 내가 그간 이 미소를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이는 웃음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아이였다. 원이의 웃음에 나까지 덩달아 따라 웃던 때가 있었다. 원이의 웃음을 보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던 나를 기억했다.
베개 위로 핸드폰 액정을 덮었다. 아주 오랜만에 긴 시간 소리 없이 울었다.
나는 원의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공원을 걸었다. 하늘이 희게 빛날 정도로 밝은 날이었고, 공중화장실, 농구 코트,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킥보드도 있었지만,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은 내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이끌었다. “저쪽에 있을지도 몰라.” 앞서가며 원이 말했다. 찾는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아는 상태였다. 나도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라우리만치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내가 문득 원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원은 그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다고, 둘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맞잡은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아, 나는 손을 빼고 그에게 팔짱 꼈다. 원은 자연스레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어디서 난지 모를 지도를 펼쳤다. 지도 속 공원은 생각보다 컸고, 그는 공원 속 ‘파란 대문 집’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이리저리 길이 난 곳을 손으로 따라가던 원이 ‘아!’하고 외쳤다. 왔던 길로 한참 되돌아가야만 했다. 지나쳤던 농구 코트 뒤 풀숲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지도에서 봤으니 우린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마냥 즐거웠다. 어느새 나무가 울창한 숲길이었다. 원과 나는 깍지를 끼고 노래를 불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원의 앞머리가 흔들리는 걸 보았다.
우리가 한참을 걷고 또 걸었을 때 그렇게 찾던 ‘파란 대문 집’이 저 멀리 나타났다. 내가 먼저 발견하곤 ‘찾았다’라고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신이 난 우리는 집 앞까지 함께 내달렸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나는 옆에서 원이 열쇠를 찾는 동안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뛰었다. 메고 있던 손바닥만 한 크로스백에서 열쇠를 꺼낸 그가 대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
원이 문을 열어주자 나는 거침없이 대문 너머로 들어섰다. 대문 너머엔 평범한 집, 우리 둘의 집안이 등장했다. 원아, 여기 우리 집이야. 내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정말 조용하다는 걸 깨달으며, 나는 잠에서 깼다.
누런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오랜만에 원의 꿈을 꿨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꿈에 나오지 않아서 괴로웠던 날도 있었는데. 깨면서 울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인 듯했다. 아직도 오른손에 온기가 남은 것만 같았다. 귓가에 웅웅대며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나도 모르게 짧게 탄식한 후 옆으로 돌아누웠다. 나뭇잎 같은 무늬의 벽지 가까이 몸을 붙였다. 벽에 이마를 대자, 짜릿할 정도의 한기가 몸에 퍼졌다. 꿈속 원의 얼굴, 노랫소리, 온기, 내 어깨에 기댔을 때 느꼈던 감촉이 매초 사라졌다. 꿈의 마지막에 집중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더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굴 근육 전체가 떨릴 정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저절로 숨까지 참았다.
기억해. 기억해. 제발 잊지 마.
숲길을 걸으며 보았던 원의 머리카락. 그러나 그 끝의 얼굴은 희미했다. 잔상은 찬란한데 마음은 암담했다. 꿈과 현실의 간극이 벌어지는 걸 아는데도 속절없이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목께에서 심장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숨을 참는 줄도 모르고 벽에 달라붙어 있던 내 몸을 누군가 강하게 흔들었다.
“한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과 울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어느새 일어난 영이 상체를 일으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악몽 꿨어?”
“아니, 아니.“
”그럼? 깨어 있었던 거야?“
”응.“
”뭐 하고 있었어?“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뭐라고?“
”잊어버릴까 봐… 꿈에 원이가 나왔는데, 눈 뜨고 있으면 까먹을 것 같아서… 꿈에서 나온 것도 까먹으면 너무너무 힘들 것 같애.“
”한아. 이리 와.”
영이 내게 팔을 뻗었다. 힘을 너무 오래 주고 있던 탓인지 몸에 힘이 없었다. 차가운 눈물이 콧잔등을 타고 흘렀다. 영이 다가와 내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가만히 영의 품에 안겨서 옷깃을 적셨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 등을 영이 토닥였다.
“꿈에서 왜 깬 거야. 나 진짜 억울해.”
“무슨 꿈이었는데.”
“몰라. 공원을 막 걸어 다니면서 집을 찾았어. 대문이 우리 집은 아니었는데, 보자마자 내가 ‘우리 집이다’라고 했어. 아니라고 할 걸 그랬나? 그러면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었나?”
“아냐. 잘했어.”
“왜? 내가 찾았다고 해서 원이가 나한테 문을 열어줬는데. 먼저 들어가라고 원이가 그래서 나는 꿈에서 깼는데.”
“꿈이잖아.”
“나는 원이를 봤다고. 원이가 내 손도 잡고, 어깨에 기대고, 같이 노래도 불렀단 말야. 아무도 없이 원이랑 나만 있었어. 진짜야.”
“응.”
“꿈 아냐. 진짜 같아. 진짜로 깼는데도 오른손이 따듯했어. 진짜 잡은 것 같았어.”
“응.”
“진짜 잡은 줄 알았는데. 깍지도 끼고, 꿈에서 한 번도 의심 안 했는데.”
“그랬구나. 울지 마.”
“근데 이제 안 그래. 원이 얼굴이 기억이 안 나. 느낌은 그대로인데, 원이 얼굴이… 나 너무 슬퍼, 영아. 어떡해. 기억이 안 나.”
“괜찮아.”
“아냐. 안 괜찮아. 아니야.“
“괜찮아, 한아.”
“아니야. 아냐. 괜찮지가 않아. 영아, 얼굴 좀 보여줘. 원이랑 똑같은 표정 좀 지어줘.”
영의 품에서 억지로 빠져나와 영의 얼굴을 붙들었다. 원과는 다른 이목구비. 그러나 똑같은 붉은 색으로 피부 위에 흐트러진 머릿결. 영의 뺨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 참담한 심정인 듯 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결국 그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영이 내 등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눈물과 함께 새어 나오는 횡설수설한 말이 품 안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영이 내 등을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정말 기묘할 정도로 꿈속의 감각이 선명했다.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감각이 아니었다. 나를 보며 분명 웃었던 것만 같은 원의 얼굴. 나와 노래를 부르고, 공원을 헤맬 때 지었던 알쏭달쏭한 표정. 열쇠를 찾으며 곤란해하는 원이 기억나질 않았다. 애초부터 내가 그를 보지 않았던 건지, 정말 내가 잊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영의 허리춤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소리 내서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자, 그래도 괜찮다는 듯 영이 부드럽게 내 등을 쓸어주었다.
한참 아침의 눈물 소동이 그치고, 영과 나는 조용히 출근 준비를 마쳤다. ‘아침은 걸러도 되냐’, ‘물 마실래’ 정도의 기본 대화만 나눴다. 탈진한 머릿속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내가 입을 다물자, 그런 나를 배려한 영도 덩달아 말수를 줄인 거였다.
버스를 타러 내가 나가기 직전, 신발장 앞에서 영이 나를 불렀다. 찌그러진 운동화 뒤축을 손가락으로 펴며 고개를 돌렸다. 덤덤한 표정의 영이 잘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내가 피식 웃자, 그가 잠시동안 나를 응시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뗐다.
“한아.”
“왜, 또.”
“원이 기억 지울까?”
그의 말을 듣자마자 척추가 곧게 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똑바로 선 내가 영을 마주 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묻자, 영이 눈을 깜빡였다.
“원이… 기억 지우는 게 더 좋지 않겠어?”
“그러니까, 대체 왜?”
“네가 너무 괴로워해서.”
“아까 내가 울었던 것 때문에 그래? 아니, 정확하게, 내가 너한테 원이 표정을 지어달라고 해서. 혹시 상처받았어?”
영의 말을 듣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에서 말이 두서없이 쏟아졌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럼?”
우뚝 선 영이 시선을 내 발치로 떨궜다. 영의 이마를 응시했다.
“내가 원이를 너무 선명히 기억하고 있어서 네가 더 괴로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영이 숨을 크게 골라 쉬느라 그의 상체가 떨렸다.
“원이를 잊을 수가 없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어서, 자꾸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네가 못 견디는 건 아닌지 싶어서 그래.”
움켜쥘 수 없는 바닷물처럼 어떤 과거는 한 시절을 적셨던 흔적만 남긴 채로 사라지는 게 당연할 뿐인데, 영과 나는 파도가 된 원을 손으로 둥그렇게 떠 올리려 하는 건 아니었을까. 햇빛에 닿아 반짝이는 걸 계속 바라보고 싶어서. 아무리 흐르는 물이 손바닥에 고여도 결국 틈새로 빠져나가고 말 텐데.
“네가 원하면 기억을 영구히 지울 수도 있어. 그럼 나도 원의 기억을 잊고, 언젠가는 원이의 존재도 희미하게 기억할지도 몰라.”
영이 고개를 들고 올곧게 나를 바라봤다. 그가 살풋 미소 지었다.
“네가 너무 힘들면 네 선택에 따를게.”
다녀올게. 한참 동안 영을 마주 보고 서있던 내가 먼저 몸을 돌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동안 등 뒤에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영의 말을 생각했다. 오늘만큼 내가 하는 일이 반복 업무인 게 다행인 적 없었다. 몇 번 실수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바로 잡아줬다. 잠을 잘 자지 못했냐며 넌지시 묻는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면 기억을 영구히 지울 수도 있어.’
그 말을 하는 영의 표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철저히 나를 배려하는 듯한, 너무 무겁지 않게 화두를 꺼내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영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첫걸음을 떼는 어린애처럼 힘겹게 몸을 돌렸던 나는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이었나. 그때부터 오로지 영의 말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일을 마치고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건물과 나무를 하릴없이 보다 보니 어느새 집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몸이 무거웠다. 겨우 버스에서 내리니, 정류장 뒤에 서 있던 영이 내게 손을 흔들며 천천히 다가왔다.
영과 나는 똑같이 산책했다. 안해연에서 영이 손님과 나눴던 대화나 내가 자꾸 실수를 연발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집 주변을 산책했다. 이제 저녁이 돼도 춥진 않네. 내 말에 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봐. 나도 팔다리가 얼지 않아서 덜 삐그덕거려. 영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종종 침묵에 빠졌다. 저녁 산책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대화가 드문 날이었다. 원과 함께 앉았던 벤치를 발견했다. 영도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선뜻 내게 가서 앉자고 말을 걸지 않았다. 벤치를 다 지나칠 때쯤 내가 먼저 걸음을 멈췄다. 영아, 우리 저기 가서 잠깐 앉을까. 내 물음에 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꾸 없음이 민망해서 괜히 한 마디 덧붙였다. 다리가 좀 아파서 그래. 영은 그 말에도 달리 대답하지 않았다.
영과 나는 바다에 몸을 담근 채 억지로 파도를 퍼내고 있던 걸까?
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억척스럽게 굴고 있던 걸까.
원이 바라던 일이긴 했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우리는 원을 잊고, 망각함으로써 애도해야 했던 걸까.
하루 종일 영의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 품었던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미 오늘 아침 꿈속의 원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주 단편적인 부분, 미치도록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장면의 편린만 남았을 뿐이었다.
내 앞에서 영은 긴장한 듯 말없이 벤치를 응시하고 있었다. 원의 기억을 지우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물은 영의 심정은 어땠을까. 영은 원을 잊지도 못하고 한없이 슬퍼하는 나를 보는 게 괴로웠을까. 아마 지난한 과정일 거라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어느 날은 원을 추억하며 행복해하다가도, 오늘은 영의 존재마저 헤집으며 원을 떠올리고자 했으니. 그런 내게 크게 실망함과 동시에 원의 부탁을 들어준 사실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욱신거렸다.
“영아. 아침에 네가 했던 말 있잖아.”
“응.”
“원이 기억을 지우자고…”
“응.”
내가 숨을 골랐다. 영은 손톱 끄트머리를 매만지며 여전히 벤치 위로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우선 네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원이가 보고 싶은 감정이랑, 네가 원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분리해야 했는데. 일단 그것 때문에 네가 상처받아서 그런 말을 꺼낸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단 생각만 했어. 하루 종일.”
그제야 영이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을 맞춘 영은 울상을 지은 나를 보곤 피식 웃었다.
“괜찮아. 진짜 상처 안 받았어.”
“그래도 내가 그랬으면 안 됐어.”
내가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영은 잠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기억을 남에게 내줄 정도로 나를 지키고 싶었던 원,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친구의 기억을 통째로 떠안은 영, 그리고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타인에게서 연인의 모습을 찾으려 했던 나. 모두가 모두를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채로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원은 어디로든 흩어질 수 있는 파도 그 자체가 되었고, 영과 나는 그 파도 속에 우두커니 선 채로 우리는 헤엄을 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영아, 원의 기억을 모두 지운다고 해서 원의 빈자리가 다른 무언가로 채워질까. 우리 각자의 몸에 뚫린 공간에 결국 원의 기억 말고 다른 무언가가 흐를 수 있을까.
영과 함께한 몇 년간 그 무엇도 원을 대체할 수 없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나는 영이 원의 자리를, 영은 스스로 그 공허를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보란 듯이 실패했다.
고마워. 네가 있어서 나는 원을 절대 잊을 수 없으니 오래도록 아프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던 ’원‘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 그리고 내 가까이에 존재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해. 우리가 잃어버린 원은, 그저 우리 마음속에 항상 남겨두자. 원의 자리를 남겨둠으로써 우리는 그냥 나아가자.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영의 손을 붙잡았다. 사뭇 따듯해진 날씨의 저녁 공원은 상쾌함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바람이 불어 영과 나의 머리칼이 끊임없이 날렸다. 강아지가 내달리고, 사람들은 우리를 스치고, 나뭇잎은 춤을 췄다. 피부를 스치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영과 말없이 오래도록 눈을 맞췄다. 마치 우리의 사이에 원이 함께 머무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