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 아니라

다가오는 계절을 위한 단단한 준비라는 것을

by 삶예글방


12월 6일 토요일 문장밥


이삿날, 수린도 함께 공간을 정리하러 왔는데 조용히 아, 이거 받아요. 하며 봉투를 하나 건네줍니다.


책이었어요. 책과 편지.


생각해 보니 책 선물은 처음인 것 같더라고요?내가 언니에게 하고픈 말이 담긴 책이에요.


예상치 못한 선물에 놀라고, 이내 곧 행복해졌습니다.


선물 받은 책은 김로로 작가의 「계절 인사」입니다. 사진이 함께 있는 산문집이에요.



아름다운 표지와 책 모양에 감탄하고 한동안 바라보고 만져보았습니다. 거친 느낌이 살아있는 코팅 안된 도화지 질감의 표지에 작은 글씨로 고고히 쓰인 제목과 작가 명. 그리고 작은 창으로 보이는 반딱이는 매끈한 질감의 풍경 한 장.


책 등은 누드 실 제본이네요. 물성으로서도 아주 취향을 만족시키는 선물입니다. 설레하면서 첫 장을 펼쳤습니다.



피고 지는 모든 것, 계절에게


처음 만나는 문장부터 마음을 일렁입니다.

이렇게 자연과 감응하는 문장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할 수 있었음에 더욱 감사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곤 한 문장에서 시선을 오래 멈추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더 해야 할 것만 같던 날들 속에서 한 걸음 물러서 보면 덜어내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멈춤이 아니라 다가오는 계절을 위한 단단한 준비라는 것을.


덜어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

떨어져 나가는 것을 상실로 보지 않고, 오롯이 각자 뿌리내리는 과정임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서로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의, 각자 맞이할 계절의 인사를 담은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이사를 마친 후 여유롭게 느린 시간으로 이어 읽어보고 싶습니다. 조용히 나를 단단히 만드는 시간 동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