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직 말하지 않을 것들
연구실 앞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조금 늦어졌다. 의식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선자마을에 온 뒤로 종종 이랬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이유는 한참 뒤에 따라왔다. 유리 너머는 늘 고요했다. 기계 소리도 사람 그림자도 없이, 숨을 참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농장의 다른 곳들은 미세하게라도 살아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는데, 이곳만은 예외였다.
아직은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내 이름은 저 문을 통과할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해주기도 했다. 나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루윈이 내 쪽을 힐끗 보았다.
“같이 가실래요.”
묻는 말투였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나란히 유충 생장실 쪽으로 걸었다. 생장실의 공기는 늘 일정했다. 사람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 숨을 들이마시면 흙과 풀, 잘 말린 곡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서울의 연구실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금속과 윤활유, 소독약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서울에서 오셨죠.”
루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
“여기 냄새,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저는.”
그는 트레이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너무 살아 있어서요. 서울에선 숨을 멈추면 버틸 수 있었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루윈은 내가 묻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처럼, 잠시 뒤 말을 덧붙였다.
“처음엔 잠깐만 있으려고 왔어요. 몸만 좀 회복하고, 다시 나가려고요.”
“그런데요?”
“떠날 이유가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어요. 여기선 버티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남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해야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까 싶기도 하네요,,”
그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더 묻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느꼈다.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듣는 게 아니라, 중간에서 멈춰주는 게 예의일 때가 있었다.
✴︎
식당 입구에 붙은 오늘의 식단을 보고 나는 잠깐 멈췄다. 곡물밥, 허브 밀웜 완자, 메뚜기 분말 수프, 발효 채소. 글자로만 보면 차분했는데, 괄호 속 설명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더 긴장되었다. 어디까지가 곤충이고 어디까지가 요리인지, 선이 일부러 흐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맛이 아니라 식감이었다. 씹는 순간 입안에서 무엇이 느껴질지,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질감이 올라오지는 않을지. 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까 봐, 그런 생각을 먼저 하는 내가 더 싫어졌다. 하지만 접시에 담긴 음식은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요리화’되어 있었다. 형태는 완자였고, 수프는 곱게 갈려 있었다. 몸체를 그대로 눈에 보이게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처음이면 긴장돼요.”
미애 여사님이 내 표정을 읽은 듯 말했다.
“근데 여기선 일부러 더 바로 먹도록 해요. 익숙해질 때까지는 몸이 먼저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거든. 아니 그리고, 먹으면 또 맛있으니까 혀가 적응하는게 먼저라고들 하고 그래.”
나는 적당히 끄덕이고는 수저를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완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향이 먼저 올라왔고, 그다음에야 맛이 왔다. 담백했다. 생각보다 훨씬. 놀란 건 맛보다도, 내가 그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식감도 문제없었다. 괜히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연구원은 말없이 수프를 저으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미애 여사님은 그런 눈치를 모르는 듯했다.
“요즘 연구실 쪽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면서요?”
그 말에 숟가락으로 한 스푼 수프를 떠먹던 연구원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 그건…” 그는 말을 고르듯 수프를 한 번 더 저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요.”
“그래도 모델 바꾼다 어쩐다 말이 나왔다면서.”
미애 여사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아이고, 여기까지 효율 타령 들어오면 숨 막히지. 대형 공장 만들것도 아니고말야 그치?”
연구원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선 그런 방향은 아니에요. 그냥… 내부 검토,, 아니 조사 단계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그때 루윈이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조사,, 검토,,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네요? 우리 농장에 새로 들이는 종이라도 있는 건가요?”
루윈이 한 말의 형식은 분명 질문이었지만 연구원에게 답을 기대하지는 않는 듯 했다.
연구원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시선을 피했다. 미애 여사님은 그제야 뭔가 잘못 말했나 싶은 얼굴로 웃으며 말을 돌렸다.
“에이, 밥 먹는 자리니까. 너무 일 얘기했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수프를 한 숟갈 더 떠먹었다. 맛은 여전히 괜찮았다. 그런데 방금 들은 단어들이 혀보다 먼저 남았다. 모델, 검토, 내부. 이 마을에서 굳이 필요 없어 보이는 말들. 애써 관심 없는 척 식사를 이어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대각선에 앉은 루윈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 다 같은 지점을 건너다본 눈빛이라는 걸 느꼈다.
식사가 끝난 뒤, 루윈과 함께 다시 일터로 향했다. 유충 생장실에서 한동안 나란히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놀림은 부드러웠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생명을 다루는 방식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 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루윈, 혹시… 연구실 출입 권한 있으세요?”
“네. 있어요. 왜 그러시나요?”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미애 여사님이 안내해주실 때 들어가보려다 말았던 이야기, 팀장이 다음에 하자고 했다는 이야기, 오늘 연구원 분을 만나 괜히 궁금해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원하시면 데리고 들어가 보여드릴 수는 있어요.”
루윈은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입출입, 열람 기록은 전부 팀장님 쪽으로 공유돼요.”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팀장님이 다음에 보여주겠다고 하셨으니까요.”
관심 없는 척 말을 정리했다. 루윈은 더 묻지 않았다.
모델 변경이라니, 설마 생장과 생산 라인 전체의 개조를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휴머노이드 시스템 의뢰를 해오는 고객사들과 나눌 때 쓰던 단어들이라 더 귀에 박혔다. 다른 업종에서도 쓸 수 있는 단어니까, 라고 무시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무언가 안개가 껴서 시야가 차단된 채 거대한 싱크홀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 가장자리에 닿지도 않았는데, 이미 안쪽의 공기가 발목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지금은 아직, 알아야 할 차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집에 돌아오니 석이 식탁 위에 자료를 펼쳐두고 있었다. 연필로 적힌 글씨가 평소의 그의 필체보다 작고 빽빽하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어때?”
학교는 어땠느냐고 묻자, 석은 아이들 이야기부터 꺼냈다. “질문이 많아.” 활짝 웃으며 답했다. 오늘 수업에서 나온 질문, 왜 답은 하나여야 하냐고 묻던 한 아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질문 뒤로 흘렀던 아이들의 열띤 토론의 순간까지.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는 시간까지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문제를 여전히 돌아보는 중이었다. 노트를 덮고 부산스레 일어나 서가의 책들을 뒤지며 어떤 책을 찾는듯이 헤매며 질문에 답을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눈을 맞추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참. 백운관 선생님도 뵈었어.”
그 말에 석의 눈이 달라졌다.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분을 만나 더 신이 난 듯 했다. "교장선생님 따라 이직하고 싶다는 선생님은 처음 봐 정말. 그렇게 반가웠어? 실제로 보니 어때" 묻자 찾던 손도 멈추고 몸을 내쪽으로 돌려 백운관 교장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아이 얘기를 듣고 교장이 던진 질문 하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이야기, 그 질문 덕분에 다시 공부하고 싶어졌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런 석의 얼굴이 낯설었다. 한동안 지쳐 보였는데, 이렇게 또렷한 눈빛을 볼 수 있다니 아무렴 모든 찝찝함이 괜찮은 것 같았다.
“다만…”
석은 말을 흐리며 웃었다. “교감 선생님이 좀,, 뭐랄까. 걱정이 되더라고. 중요한 회의에 빠지고는 오후 출근하셨는데 윗학년 샘한테 들어보니 정기적으로 개인 사정을 이유로 구체적인 말도 없이 매번 부재중일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 오늘도 오후 늦게 나타나서는 내가 제대로 소개도 안했는데 서울에서 온 선생님을 간절히 기다렸다면서 내 두손을 붙잡고는 잘 키워보자 하더라고. 근데 그게 참 있잖아. 아이들을 키워보자가 아니라 이상하게 학교를 키워보자. 이런 얘기로 들리는건 내 예민함 때문일까? 아무튼 그랬어.”
그 말은 가볍게 흘려보낸 듯했지만, 어딘가에 걸렸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다시 낮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모델 변경이라는 단어, 연구원의 불안한 표정, 연구실 앞에서 느꼈던 미묘한 정적. 다른 업종에서도 쓸 수 있는 말이라고 무시하려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전히 안개가 낀 채로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야는 흐릿한데, 발밑 어딘가에 깊은 구덩이가 있다는 사실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괜히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맡았던 풀 냄새를 떠올리며 숨을 고르게 들이마셨다. 몸은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지만, 생각은 아직 농장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하자. 오늘은.'
아직은 연결 짓지 않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이 찝찝함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