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연의 이야기 (2)
“무사히 잘 들어왔네. 고생했어.”
“고마워. 네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계속 방에 있었을 테니까.”
“서로 덕분이라고 하자. 나도 누나 덕분에 도서관에 다시 올 수 있었어.”
단오는 그의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연보다 다섯살이나 어리다는 것을 미리 편지로 물어보지 않았다면 동갑내기로 봤을 것이다. 글로만 대화하던 사람과 드디어 목소리를 나누어 대화를 한다는 사실에 연은 긴장과 설레임이 함께 몰려와 호흡이 짧아지는것을 느꼈다. 단오의 부슬부슬 헝클어진 곱슬머리가 말하며 움직일때마다 가볍게 앞뒤로 흔들렸다. 문 옆으로 반 발짝 물러서며 몸을 살짝 비켜 한 팔을 펼치며 안쪽을 가리키고 말을 이었다.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소감이 어때?”
“아직… 얼떨떨해.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그래도 열심히 찾고 공부해야지.”
“그래. 같이 잘 해보자.”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시간은 길고 아득하다 생각하며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공기도 눈 앞의 빛깔도 한 톤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스레 연의 어깨도 호기심과 기대로 바짝 올라왔다. 넓게 펼쳐진 도서관 바닥은 직선 대신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유도하는 길을 따라 연과 단오는 서가로 향했다.
연이 안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서자 도서관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벽과 곡선이 겹쳐진 공간은 시선을 자유롭게 열어주었다. 다른 층의 사람들까지도 눈을 조금만 돌리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세 걸음 앞서가던 단오는 갑자기 소리 없는 인기척을 느낀건지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보니, 유리 벽 너머 바깥에 책 수레를 끌고 있는 흰 머리의 여성이 이쪽을 보며 두 손을 사용해 움직이며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듯 했다. 단오는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짧은 수어로 답했다. 인사를 마친 그는 머지않아 중앙에 있는 계단 쪽으로 이동해 아래층의 누군가에게 팔과 손가락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는 혼자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단오가 웃으며 말했다.
“어린이 도서관 사서 형님. 신입 온거냐고 물어보시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잘 왔다고 했지. 즐거운 고생 시작이네라고 하셨어.”
연은 소리내어 웃은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재채기를 참듯 조용히, 마치 들키면 안 될 것처럼 조심스레 웃음을 삼켜 누르고는 물었다.
“잘했네. 그런데 보통 그렇게 손을 사용해서 대화하고 그래?”
“도서관에 청각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여럿 일하고 계시거든. 아마 누나도 일하다 보면 곧 금방 적응 될 거야. 그리고 얼마나 편한지 적응되면 말 할 필요를 잘 못느끼게 될걸? 계단 내려가지 않아도 소통 되고. 밖에 나가지 않아도, 소리지르지 않아도 가벼운 소통이 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서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높이가 유난히 낮은 책장 위에 초록 식물들이 작지만 촘촘하게 자리를 잡아 눈길을 끌었다.
“서가가… 다 낮네. 낮은 책장에 식물.. 싱그러워”
“응. 일부러 그래. 천장에 햇빛길이랑 바람길을 신경써서 설계한 게 이 식물들 위해서라고 하더라고. 책도 더 꽂을 수 있어도 안 꽂아. 휠체어 쓰는 사람도, 아이도, 어르신도 같은 높이에서 책을 힘들이지 않고 꺼낼 수 있게. 바닥층을 비워둔 것도 그래서고.”
“그러니까. 네가 보내준 구조도로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섬세해. 얼마나 많이 고민 하셨을까.”
“많은 책보다 많은 사람을. 고모의 뜻이야. 모두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어. 편하게 좀 둘러보고 있어. 나 신간 도서들 좀 정리하고 올게.”
단오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를 마치고는 책장을 손으로 쓰다듬고 뒤돌아 나갔다. 연은 단오의 대답하는 낮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에서 뿌듯함과 자부심을 들었다. 그리고 이 공간이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오래된 의지의 결과물이라는 걸 느꼈다.
헤매이듯 굽이진 서가 사이를 걷다가 사회과학 푯말이 써진 방향으로 돌아 들어서자 빛의 온도가 달라졌다. 한쪽 벽 전체가 창으로 되어 있었다. 투명한 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이 서가 위에 내려앉아 있었고, 공기도 색감도 다른 구역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연은 무심코 책등을 손끝으로 훑었다. 햇살에 은은히 구워지듯 종이의 온도가 손에 전해졌다.
“여기… 따뜻해.”
“해가 제일 오래 드는 남서향이니까. 멀리 바다가 보이는 귀한 풍경을 액자로 가진 구석이야. 오래 머무는 곳에서 몸이 먼저 편해야 한다고. 이거 주고 가려고. 진짜 다녀올게!”
나간 줄 알았던 단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깜짝 놀랐지만, 연은 그의 말이 좋았다. 도서관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들렸다. 오래 머물 수 있을까. 연은 생각하며 그가 쥐어주고 간 텀블러를 열어보았다. 주홍빛 호박차가 김을 내며 찰랑이고 있었다. 한 모금 마시며 옆으로 걸으며 서가를 훑다 오른쪽 발에 무언가 채여 내려다 보니 귤색을 빼어담은 듯한 연한 주황빛 라운지 체어가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은 자신이 두 시간 째 내리 한 번도 앉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조금은 쉬어도 괜찮겠지 생각하며 연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보았다. 거친 옥스퍼드 면처럼 보였지만, 몸을 깊게 받아주는 포근한 질감에 올라가있던 어깨도 살짝 내려앉았다. 연은 그제서야 등을 기대어 몸의 긴장을 풀고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 놓았다. 호박차를 한모금 더 마셨다. 처음 보는 단오의 호의에 익숙한 따스함을 느꼈다.
정면으로 비치된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연한 살구빛 표지의 책, 부드러운 깃털이 잔잔하게 그려진 배경 위에 샴페인빛 핑크골드로 금박으로 써진 제목은 연에게 익숙한 제목이었다.
『다정함의 과학』
연은 반가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곧장 책을 꺼냈다. 손에 쥐는 순간, 한낮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종이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옮겨왔다. 연은 책을 바로 펼치지 않았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손가락으로 표지 위의 문장을 천천히 훑었다.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한 눈에 봐도 오래되어 울어 있는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천천히 더듬으며 훑어나갔다.
“즐거운 독서 되셨어요? 오늘은 어떤 책 읽으셨어요?”
나는 다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공간의 공기가 어떻게 바뀌는지 안다. 낮은 듯하지만 부드럽고, 힘이 빠지지 않은 톤. 무거운 이야기도 눌리지 않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다. 다정은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고 테이블로 상체를 기울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손을 모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쳐다본다. 긴 머리는 대충 질끈 묶여 있지만, 말의 끝은 단정하다.
“저, 오늘 먼저 말해도 될까요?”
높고 여리게 떨리는 목소리로 인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 네. 그럼요, 인형님. 좋아요. 오늘은 어떤 책 읽으셨어요?”
“사실,, 오늘 책이 잘 안 읽혔어요. 요즘 일이 좀 바빠서,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골라 읽긴 했는데… 글자가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럼 그런 날이 있죠.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날. 그럴 땐 마음에 먼저 충실해야 해요. 책보다요.”
인형은 잠시 숨을 고른다.
“실은… 벌써 육개월 쯤 됐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요. 이혼 한 지요. 그동안은 잘 지내는 척은 했는데, 요즘은 혼자인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괜히 방해가 될까 봐, 먼저 말을 아끼게 되고요 그치만 여기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요즘요. 좀 많이 외로워서 힘들어요.”
나는 인형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시선을 돌려 호박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다정은 조용히 일어나 그녀 뒤에 있던 까만 철제 책장에서 책을 한 권 집어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모두에게 표지가 보이게 들어 보였다.『다정함의 과학』. 다정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손가락으로 페이지 속 문장을 헤매듯이 천천히 훑었다. 그녀가 낭독을 시작하기 전 3초의 시간을 나는 아주 사랑한다. 그 손끝이 문장 위를 지나갈 때면, 나는 언제나 다른 세계로 끌려가곤 했으니까.
“인형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문장이 있어서요. 감정 얘기만 하는 것 같지만, 과학서이고요, 그러면서도 쉽고 재밌게 도움 되는 책이에요. 한번 읽어 볼게요”
다정의 낭독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손길은 인생의 어느 시기든 항상 건강에 중요하다. 마사지가 조산아, 자폐성 아동, 유방암에 걸린 여성, 자가면역 장애를 가진 사람들(천식과 다발성 경화증 포함), 치매에 걸린 고령자에게 주는 잠재적 이점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늘고 있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사교적인 방문만 받는 노년층 환자들보다 사교적인 방문과 짧은 마사지를 함께 받는 환자들이 인지적, 정서적 이점을 더 많이 얻는다고 한다. 또한 마사지를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도 이점을 얻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요. 몸은 생각보다 훨씬 솔직하다는 거죠. 외롭다고 말 안 해도 이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감탄했던 게, 포옹을 받는 사람만 좋은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해주는 사람도 같이 좋아진다는 말이요. 정말 좋지 않나요? 다정함을 주는 게 아니라 주고 받는 거죠. 주면 받는 거예요.”
“매일 포옹을 받은 사람들이 병에 걸릴 확률이 32퍼센트나 낮았대요. 운동, 비타민, 그리고 포옹. 셋 중에 제일 쉬운 게 뭐겠어요?”
그 순간, 신록이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인형 앞으로 가 두 팔로 그녀를 안았다.
다정은 잠깐 놀란 듯하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시선을 책으로 내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차를 마신다. 인형은 놀란 얼굴로 있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어깨의 힘이 풀리고, 숨이 깊어지는 것을 함께 숨죽여 들었다. 십 초 가량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신록의 팔이 천천히 풀렸을 때, 인형의 눈가에 고인 물기가 조용히 그녀가 읽던 책 위로 떨어졌다. 나는 호박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아까보다 조금 더 달큰하다.
“책에 이상적인 포옹 시간이 6초에서 20초까지라고 하던데요.” 다정이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알고 또 그렇게 충분히 안아주신 거예요, 신록님?”
“기억 안 나세요?” 신록이 웃는다. “처음 왔을 때도 이 책 소개해주셔서요. 장난치면서 샀는데, 인생책이 됐거든요. 그래서 낭독 듣자마자 그냥 안아드리고 싶었죠.”
웃음이 테이블 위를 천천히 돈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생각한다. 오늘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면, 신록을 꼭 안아주고 싶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조금 오래.
연은 책에서 손을 뗀다. 도서관의 사회과학 코너가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투명한 벽을 타고 들어오던 햇살은 어느새 각도를 바꾸어, 낮의 흰빛 대신 부드러운 금빛을 머금고 서가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책등에 얹힌 빛이 조금 전보다 더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연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다정님… 잘 지내고 계실까.”
말끝이 흐려지자, 연은 다시 한 번 입 안에서 단어를 굴려본다. 포옹. 방금 전까지 책 속에서, 그리고 기억 속에서 반복되던 단어였다.
연은 가만히 생각한다. 누군가를 안아본 게 언제였지.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떠올랐다. 삼 년이 넘었다. 그 사실이 숫자보다 먼저 몸으로 와 닿는다. 경을 안아본 건 언제였더라. 날짜는 끝내 떠오르지 않는다. 날짜를 더듬거리다 별안간 신록의 얼굴이 떠오른다. 인형을 말없이 안아주던 팔, 그리고 같은 팔로 자신을 안아주던 밤들. 연은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 걸 느낀다. 눈물이 아주 잠깐 고였다가, 더 내려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문다.
연은 눈물을 서둘러 훔치고, 다시 책을 덮으려다 책 사이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접혀 있던 쪽지였다. 연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다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런 삶, 이런 생활을 하는 삶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연은 쪽지를 쥔 채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이 문장이 질문인지, 기록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다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연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이곳은… 그런 곳일까. 선자님은 어디 계신 걸까. 이 도서관 어딘가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
연은 쪽지를 다시 접어 책 안쪽에 넣고, 책등을 천천히 서가로 밀어 넣었다. 종이가 제자리에 닿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다. 그 소리와 함께, 도서관 안으로 노을빛이 깊어진다. 황금빛이 서가를 비추며 책등의 색을 하나씩 바꾸고 있었다. 연은 그 빛 속에 잠시 서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러나 분명한 질문 하나를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