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마을

#5. 순환농장 (2)

by 삶예글방


“여사님.”


낮고 정리된 목소리가 잡은 손을 나무라듯 무겁고 빠르게 미애의 손 위를 때리는 듯 했다. 마치 무거운 망치로 문을 잡은 손등을 맞은 듯이 미애가 놀라 움찔하며 손잡이를 화들짝 놓고는 뒤로 돌아섰다.


한 손에 야무지게 들고 있던 바구니는 그 충격에 떨어트리고, 담아둔 웜의 먹이로 쓰려고 담아둔 풀이 다 바닥에 흩어졌다.


같이 뒤돌아 비켜서며 쳐다보니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위로 있을 만큼 키가 큰 한 남자가 미애와 내 뒤에 서 있었다. 문 앞에서 먼저 서 있던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한 발 더 들이려는 순간 그림자처럼 옆에서 나타나 있었다. 몸에 딱 맞게 다린 작업 셔츠 위에 얇은 남색 재킷을 걸쳤는데, 농장 사람들의 옷보다 한 겹 더 빳빳하게 잔주름 없이 펴져 있었고, 흙이나 풀가루가 묻을 자리가 애초에 허락되지 않은 옷처럼 보였다. 햇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얼굴은 반쯤만 보였는데, 눈매가 유난히 반듯해 눈동자가 아니라 선이 먼저 들어왔다. 길고 마른 손가락으로 미끄러지듯 훤한 이마를 짚는 손톱 아래엔 지나치게 깨끗해 이곳의 흙과 풀이 가득한 공기와도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이 사람은 오래 바깥을 보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늘 위쪽을 의식하며 자리를 지켜온 사람 같이 등부터 목은 꼿꼿히 서 있었고, 눈 만을 내리 깔고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며 할 말을 계산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고생 많으시죠? 바쁘실텐데, 여기서부터는 제가 이어서 안내하겠습니다.”

미애는 입을 삐죽였다.

“아니, 팀장님! 오늘 오후에 출근하신다고,, 내가 얘— 아니 경씨를 그러니까 좀 알려주려고~”

“오전 일이 일찍 끝나서 조금 먼저 들어왔습니다 여사님, 오늘은 여기까지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그는 아주 부드럽게,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또 다시 무겁게 내리꽂듯 빠르게 미애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앞으로 저를 도와 함께 해주실 일이 많으실테니까요.”

그 말은 부드럽고 나긋하게 들렸지만 다른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대화의 종료 알림음처럼 들렸다.

그러나 미애는 '도와 함께 해주실 일'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기다렸던 말을 들었단 듯이 굳어가던 표정을 다시 풀고서는 뒤로 물러서며 미소와 함께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그렇죠? 맞아요. 제가 또 도울 일이 많을거니까요. 그쵸? 또 봐요, 경이씨. 내가 많이 도와줄게. 나만 믿으면 돼.”

갑자기 애매한 존댓말을 남기고 미애는 내 양 어깨를 세게 쥐듯 잡고 흔들고는 사육실로 들아갔다.


남자는 나를 향해 인사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순환 농장의 책임자 정해성 입니다.”

나는 작은 고갯짓과 함께 이름으로 인사를 돌려줬다.


정해성은 반갑다는 형식적인 친절을 곁들인 인사와 함께 자연스레 연구실 앞을 지나쳐 왔던 길로 나를 안내했다.


“저긴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될 거예요.”

목소리는 차분했고 내가 질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생산실


문이 열리자 공기의 결이 변했다.

냄새는 없었다. 부패 냄새 대신 물기와 금속이 스치듯한 공기.

소리는 거의 없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며 이동하는 소리만 있었다.


덜컹—
슥.
덜컹—
슥.


천천히. 108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처럼, 벨트 곁을 지키며 숙였다 들었다 반복하며 경건하고도 조용하게 움직이는 손들이 보였다.


컨베이어 위엔 커다란 메뚜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걸 보니 죽은 것 같았지만, 마치 방금 생을 다한 듯 몸은 여전히 탄력이 있었고 금방이라도 몸통을 돌려 일어날 것 같아 보였다. 반짝이는 곳이 있어 눈을 돌려보니, 떼어내 모은 날개들이 생산실 조명을 받아 옅은 무지개빛으로 반짝였다. 숱하게 가득 쌓인 날개는 모인 날개들끼리 덩어리를 이루어 하나의 거대한 구를 만들어 날아가기라도 할 것 처럼 크게 모여있지만 가벼워 보였다. 가득 모여 있는 날개들은 아래에 천천히 돌아가며 벨트위에 펼쳐지는 모습이 물 빛이 일렁이는 윤슬을 보는 것 같아 멍해졌다. 충격적이고, 아름다웠다. 이 장면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려던 걸 알아채기라도 하듯, 해성이 조용히 옆에서 말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개체를 죽이지 않습니다. 개체들이 수명을 다하면 센서가 감지하곤 즉시 보존실로 이동 돼죠. 그리곤 열 두시간 안에 생산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요. 그래서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참던 숨을 조금 내쉬고 메마른 목에 침을 넘기며 겨우 그렇군요. 정도의 대답만 뱉고 시선을 다시 가까이서 눈 앞의 메뚜기의 모습에 눈을 고정했다.


“떨어진 과일만 먹는 프루테리언들 아시나요?”

“네. 저도 채식을 하고 있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설계자는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어요. 우리도 때를 기다립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죽자 마자 생산실로 옮겨져서,,, 그런데 설계자라구요? 설계자는 누구인가요?”




그 때, 내 질문을 이번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레 듣지 못한것처럼 해성이 내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두어번 크게 흔드는 손이 내 질문을 매연을 밖으로 환기시키듯이 휘저으며 날려보내는 듯 했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여성이 다가왔다. 작고 볼록한 이마를 훤히 드러내어 두 갈래로 머리를 땋아내린 모양이 유치하지 않고 이상하게 성숙하기까지 해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름이나 흰머리가 늘어도, 안티에이징이니 저속노화에도 관심이 좀처럼 없는데도 그녀의 탄탄하게 반짝이며 볼록한 광대와 이마선이 아름다워 멀리서부터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았다.


상커풀 없이 길고 예리한 눈매를 조용히 반짝이며 멀리서 다가오다 정해성을 향해, 그리고 옆에 있는 나를 향해 눈을 살짝 내리깔듯 가볍게 인사를 끝내고는 곧이어 옆으로 돌아 보존실에서 나와 누워 있는 메뚜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고맙다.”


그리고는

톡, 톡,
날개를 하나씩 떼어 파렛트에 올리고는 다리를 뜯어냈다. 그리곤 남은 몸통을 컨베이어에 조심스레 올렸다.

동작은 빠르고 거침 없어 보였지만 절제가 있었다.


조용히 과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정해성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루윈. 새로 오신 경 씨입니다. 오늘 생산실 안내를 부탁합니다.”

루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못할듯 자신이 챙겨 안내하던 정해성은 루윈을 보자마자 남은 모든 순서를 내 앞에 선 루윈이라 불리는 여자에게 안내하고는 조용히 생산실을 나갔다.





“처음엔… 놀라죠.
괜찮아요. 조금 지나면
다르게 보여요.”


목소리는 낮았고 확신이 있었다.





루윈은 다음 메뚜기를 올리며 말했다.


“우린 빼앗지 않아요.
살았던 시간은
그들의 것이에요.
마지막만 같이 써요.
예의예요.”


그 말이 내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건드렸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잔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조용히 평화로웠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도시에서 철과 기름 냄새가 가득한 아침을 보내던 내가

지금은 풀과 흙과 죽음을 마주보고 있었다.


여긴 휴머노이드도, 슈퍼 컴퓨터도 없었다.

대신 사람과 생명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 하는 걸까.



벽의 문장이 떠올랐다.



고맙다. 다시 돌려주자.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설계자는 누굴까.


이 농장을, 아니 이 마을을
조금 더 천천히,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졌다.













나은 작가소개 최종.jpg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