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마을

#3. 마을을 둘러보다

by 삶예글방



연은 도서관에서 일하겠다고 했다. 그래. 연이 가는 곳에 책이 있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몇 년 만의 바깥 생활인데, 마음은 괜찮은 건지, 사람들과 어울려 일할 준비는 된 건지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방을 가득 채운 책들과 함께 생활하며 고요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을 종종 환기를 위해 열어둔 문틈새로 발견했을 뿐이다. 왜 선자마을로 가자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이 스스로 선택한 마을이니까. 걱정보다는 기대를 해보자고 마음을 다스려 본다. 그렇게 졸이다 넘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근하기로 한 시간보다 두 시간은 일찍 준비를 마친 채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나서고 있었다. 두께감 있는 흰색 옥스퍼드 면에 까만 얇은 세로 줄무늬가 그려진 셔츠에 밑단을 얼기설기 두 번 정도 접은 짙은 회색빛 생지 데님 팬츠를 입었다. 오늘은 드디어, 후드 집업이 아닌 옷, 그러니까 모자로 얼굴을 숨기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이다. 어느새 내 눈앞을 고고히 지나 묵직한 가방을 현관 옆에 세워두고 중문을 여는 연을 보며, 놀라고 기쁜 마음을 들키면 다시 숨어버릴 것 같은 마음에, 애써 무심한 척 컨버스화의 끈을 한 줄 한 줄 당겨 신고 있는 연에게 조심히 물었다.


이제 가니? 도서관으로 간다고 했지?

끄덕이는 건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 턱이 신발끈을 잡아 묶는 손을 향해 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잘 다녀와. 근데 9시까지 출근 아니니? 왜 이렇게 일찍 가는 거야?

차 조심하고, 사람도 조심하고,, 그리고 힘들면 조퇴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선자마을이 처음인거지, 회사 생활이 처음인 건 아니니까 엄마. 걱정하지 마요. 조퇴는 무슨,, 걱정하지 마요. 다녀올게요.


오랜 은둔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 길이어서였을까. 마치 3년 전과 같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두 마디나 내뱉고 집 밖을 나섰다. 모처럼 들은 연의 목소리엔 그때와 다른 날카로움과 무게가 느껴졌지만, 그래서 예전처럼 밝은 미소는 볼 수 없었지만, 그것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연의 선택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이주를 결정하고 집에서 이사까지 몇 주 함께 지냈음에도 선자마을에 오기까지 연에게서 아무 이유도 듣지 못했다. 그저 몇 년 만의 연의 바람이었고, 그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무조건 따르기로 한 것이다. 석과 내가 3년 만에 들은 연의 첫 요청이고 요구였다. 선자마을로 이사 가고 싶어요.라고 화면에 뜬 문자는 소식이 끊긴 딸의 작은 신음 소리라도 듣기 바랐던 두 사람에게 넘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숨소리로 들렸다. 우리는 그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기로 했다. 실은 그것 외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혼자이길 선택했으니까. 집에서 지원해 주는 생활비도 받지 않았다.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을 뿐이다. 석과 나는 서로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또 각자의 일에 지치는 와중 연에 대한 연락도 소식도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질 때마다 예민해져서는 서로 날을 세우며 비난을 쏟기도 하면서 슬슬 지쳐갔다. 집 안에선 석의 목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석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나의 일도 극한에 와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마을을 둘러봐야지.



배정받은 새 일터에 출근하기 이틀 전, 입사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마을 산책할 겸 30분 일찍 집에서 나왔다.


아침에 보면 이런 풍경이구나. 하늘이 넓게 펼친 부채모양처럼 크게 펼쳐져 있다. 모든 건물이 3층을 채 넘지 않는 듯하다. 어디로 시야를 돌려도 빌딩 숲이 보이던 서울의 아침 거리 풍경이 벌써부터 전생처럼 느껴진다. 촌구석 같이 원시적인 이 낯선 풍경이 왜 친숙하게 느껴지는 걸까.


공유 카트와 자전거가 세워진 공용 데크에서 자전거 한 대를 골랐다. 이 마을엔 대중교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다. 대중교통 대신 공유 교통만 존재했다. 네 발 짐승이 사라진 자리에 다리 하나 없이도 도심을 질주하던 각종 기계가 가득하던 서울과 달리, 여기선 사람이 몸을 써서 이동하는 것이 규칙처럼 굳어 있었다. 지도를 펼쳐 농장으로 가는 길을 살폈다. 농장 부지의 둘레길을 타고 가면 될 듯했다. 자전거에 올라타 농장 둘레길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 공기가 차갑게 눈과 콧속으로, 머리카락 틈 하나하나 사이로 스며온다. 머리가 맑아지는 서늘함에 외투의 지퍼를 턱 밑까지 올리고 페달을 굴려본다. 선자마을의 아침은 서울의 아침 공기와 다른 결을 품은 듯하다. 회색 먼지를 머금어 눈을 흐리게 떠야 하는 까끌한 바람도 없고, 미끄러지듯 빠르게 질주하는 차량들의 공기 마찰 소리도 없고, 사람들 스마트워치 알람이 내는 소란한 진동도 없다. 대신, 어딘가에서 풀잎이 비비는 소리, 먼 언덕 위에서 되레 나의 소리를 기다리는 듯이 경청해 주는 정적이 흘러내려온다.


길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 기웃거리며 페달링을 하던 중, 갈림길에 다다랐다. 자전거를 세우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주머니에서 마을 지도를 꺼냈다. 그때,


퍼드득, 슈욱-


작은 날개가 공기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생전 처음 보는 모양과 색을 가진 새 한 마리가 표지판 위에 가만히 앉아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한 것도 아닌, 조용한 무늬의 갈색 둥근 몸 …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녹색의 눈동자는 유난히 반짝였다.


고개를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기울이고는 총총 거리며 등을 돌려 날아갔다.


나를 반겨주는 거니? 아니면 의심하고 경계하는 거니.


답이 없는 질문을 혼자 던진 후 지도를 다시 보니 농장은 큰길을 벗어난, 왼쪽 좁은 길을 따라가야 나오는 야트막한 동산 너머에 위치해 있었다. 페달을 밟아 좁고 굽이지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미터는 괜찮았다. 하지만 곧 허벅지가 불에 덴 듯 뜨겁게 타올랐다. 도심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만 움직이던 다리는 이렇게 실제 흙길을 오르는 걸 잊은 지 오래였다. 숨이 짧게 끊어지고, 페달을 잡은 발목에서 약한 찌릿함이 올라왔다. 핸들을 쥔 손에서는 금속 냄새 대신, 오래된 나무 손잡이가 은근하게 스며 나오는 냄새가 묻어 나왔다.

몸은 이 자연 속의 동작을 낯설어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되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도심에서라면 이미 세 번쯤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바람조차 인공 환풍기 속 냄새였던 거리에서, 이런 살아 있는 바람을 폐 깊숙이 집어넣는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언덕을 넘자, 풍경이 한꺼번에 깊어졌다. 농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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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