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순환 농장
엄격한 위생 관리 시스템이 있을 줄 알았는데, 농장은 그냥 아마존 같았다. 미로처럼 시작되는 입구에선 농장의 건물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앞엔 야생 식물들이 가득 우거졌다. 자전거 출입 금지라더니, 이 정도면 사람도 출입 금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참을 마구잡이로 자란 잡초인지 야생 풀인지 모를 길고 뾰족한 잎들이 무성하게 나있는 길 양옆으로 이리저리 풀들에 툭툭 튀어 오르는 것들이 보였다. 메뚜기였다.
풀도, 메뚜기도 말도 안 되게 컸다.
길을 숨길만큼 자라 있는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 사이로 뛰어오르고 날아다니는 풍경에 발을 떼기 힘들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풀잎이 바닥까지 눕듯 넘어지다가 다시 일어났다.
가까스로 풀을 팔과 다리로 가르며 길을 디디고 지나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이상하게 가볍고, 조금 불안했다.
먼저 사람들의 어깨가 보였다.
허리를 굽혀 풀을 자르는 사람,
상자를 옮기는 사람,
어딘가를 바라보며 잠시 멈춘 사람.
말을 하지 않는데 혼자 같지 않았다.
한 남자는 목에 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어깨는 불편해 보였지만 손끝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잎을 다루는 손이 너무 섬세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살짝 옆에서 어두운 피부의 젊은 여자가 긴 잎을 한 번에 묶어냈다.
한 손은 장갑, 다른 손은 흙. 밸런스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의수처럼 보이는 팔로 상자를 들어 올리는 남자가 있었다.
땀과 먼지 속에서도 얼굴은 편안했다.
배가 도톰한 여자가 있었다. 임신한 것 같았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어울렸다. 나는 한참을 보고 있었다.
“처음이시죠?”
옆에서 목소리가 났다.
나는 놀라 돌아봤다.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짧은 단발, 정돈된 눈매, 바구니를 안은 손.
구두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여기… 농장 일하러 왔어요?”
조금의 존댓말. 하지만 눈은 이미 나를 훑고 있었다.
“네. 오늘 입사 신고하러 왔습니다.”
“아, 그랬구나!”
말투가 바로 가벼워졌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난 미애예요.
여기서 일한 지는 4년쯤 됐고, 이것저것 다 해. 뭐 다들 3개월에서 1년 겨우 일하는 사람도 많긴 한데 난 좀 오래 했지. 매니저라 불러도 되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소매를 톡 쳤다.
“아우 그나저나 똑소리 나게 일 잘하게 생겼네. 근데 왜 이리 땀을 흘려? 이 선선한 날씨에? 어디 뭐 뛰어왔어요?”
“아. 자전거 타고 왔어요.”
“그래, 운동도 하는구먼? 일 잘할 것 같어. 아주 씩씩해 보여.”
“네. 체력은 좋은 편입니다.”
“그래요 일은 얼마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자마을엔 이번에 왔다고? 아 그 진이네 가족 나가고 들어왔다는 가족인가 보네?”
“네. 이번에 이사 왔어요. 일만 잘 맞으면,,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가볍게 웃었다. 실은 두 달, 아니 최소 근무 조건만 채우고 무조건 도망가고 싶다.
“성함은?”
“선우 경입니다.”
“오케이.
경.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여긴 말 편해야 숨 쉬어져.”
미애의 말은 점점 많아지면서 빨라졌다.
“도시에서 왔다며?
내가 딱 알았어.
어깨가 딱 올라가 있거든.”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짚었다.
“긴장 풀어.
여긴 안 도망가.
다 자기 일 해.”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 툭 새어 나왔다.
“다들 말이 잘 안 통하니까.
좀 답답하지.
근데 뭐… 일은 잘해.”
그녀는 다시 앞을 가리켰다.
“농장 본관은 저 안이야.
풀에 가려서 안 보여.
가깝게 가야 보여.”
그리고 또 내 팔꿈치를 톡 건드렸다.
“가자.
천천히, 풀 밟지 말고”
조심히 어기적 거리며 걷다 보니 불쑥 건물이 나타났다.
초록 벽, 이끼, 어디가 문인지 바로는 알 수 없었다.
미애가 녹슨 철문을 밀어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벽에 커다랗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먹는 생명은 우리를 살립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돌려줍시다.
나는 잠시 바라보며 서 있었다.
문장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여긴 밥방이야.”
미애가 재배실이라 쓰여있는 문을 열었다.
습기가 확 올라왔다.
풀들은 자랄 대로 자랐고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린 사료 안 써.
풀로 키워.
흙이랑 햇빛이 제일 좋아.”
다음 방에는 작은 통들이 줄지어 있었다. 투명한 벽 안에서 알들이 반짝였다.
“여기서 태어나.
온도랑 습도.
정확해야 해.
사람보다 예민해.”
작은 숨결이 들렸다. 내 숨인지, 알의 숨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성충 사육실이야.”
숨을 가득 참고 따라 들어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불쾌한 냄새가 가득할 거라 생각했던 공간에선 흙냄새만 가득했다.
커다란 메뚜기들이 넓은 공간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할까? 그보다 약간 더 크려나. 가까이 다가가기 무서웠다. 내가 알던 크기가 아니었다. 공격하진 않을까, 팔에 모든 털이 섰다.
“풀을 바꾼 거야.
지들 입맛에 맞는 풀을 어째 연구진들이 잘 찾은 건지, 지들이 여기 풀이 좋은 건지, 조금씩 커지더니 세대가 얼마나 반복돼. 얘네는 몇 달 살고 죽잖아. 그 새 호르몬이니 뭐니 약 쓸 필요 없이 이렇게 커졌어. 말하자면 그 뭐냐. 어 그래. 자연 생육, 그거지.”
다른 쪽엔 두툼한 웜들이 흙 위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친구들도 아주 크고 튼실하지? 단백질 70퍼센트.
돼지보다 좋아. 나는 맛도 좋던데. 아 이런 얘긴 얘네 들을 때 하는 거 아니랬는데, 뭐 어때. 쟤네가 귀가 있냐고. 참내 하여간 오지랖도 넓어 팀장은. 설계자님 지시래나 뭐래나. 하여간 말도 예쁘게 하라고 신신당부야. 여하튼 얘네들은 자라는 동안 탄소배출도 거의 없다대. 물도 조금만 쓰고. 집도 작잖아. 그렇지? 얼마나 착한 친구들이야. 이 친구들이 이 마을 먹여 살리는 거야. 경이 씨도 나도. 세상 바뀌었지?”
미애의 눈이 반짝였다.
다가오는 얼굴에 부담스러웠지만 그녀의 말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미애의 명강의를 듣고 복도로 다시 나왔다. 끝자락에 유일하게 반짝이는 질감의 투명 유리문이 있었다.
안쪽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자연스레 시선과 함께 발길도 멈췄다.
“저긴… 연구실이에요?”
미애가 히죽 웃으며 이미 문고리에 손이 갔다.
“그럼. 연구실이지. 재밌는 곳이야 여기가.
곤충만 있는 거 아냐. 난 가끔—”
문이 열리려는 순간 가슴이 조여왔다. 연구자의 본능인가. 탐색해보고 싶어졌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렇지만 애써 침착하게 최소한의 보안 원칙을 떠올리며 물었다.
“잠깐만요, 제가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몰라.
난 들어갔어.
언제든—”
그때
손이 툭,
내 손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