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길을 건너지 마오

어쩔 수 없다 하여도 그래도..

by 삶예글방



920명


2024년 한 해 동안 보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다. 2024년은 공식적으로 교통사고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래 교통사고 사망자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행 중 사망사고, 대부분은 무단횡단 사고다. 이 사망자의 숫자는 2023년보다 3.8% 증가했다.


누군가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을 박탈당한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저 운전을 했을 뿐이다.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제한속도를 지켜도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무단횡단 보행자를 피할 수가 없다. 물론 전부 무단횡단 보행자의 탓은 아니다. 분명 그렇지 못한 운전자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난 이 사실이 참 답답하다. 무단횡단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허나, 급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핑계로 그냥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다. 물론 차량이 오는지 확인하고 안전하다는 판단하에 신속하게 무단횡단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어떠한가. 차량이 오는 방향을 쳐다보지도 않고, 스마트폰에만 열중하여 땅바닥만 쳐다보고, 운전자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사각지대에서 뛰어나가 벌어진다.


일하기 전에는 무단횡단이 얼마나 위험하고 빈번하며 중대한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내니 무단횡단을 자주 목격한다. 특히나 눈앞에 버스를 타기 위해 저 멀리서부터 버스만 바라보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복장이 터진다. 아니 이게 막차도 아니고 기다리면 다음 버스는 올 텐데 굳이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오는 걸까 의문이 든다. 처음엔 속으로만 생각했다. 저러다 사고 나면 사고를 낸 운전자는 아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당하는 꼴이 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버스 한 번 타려다 영원히 못 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특히나 BRT노선은 도로 중앙에 버스전용차로로 운행한다. 그러니 도로 가장자리의 인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BRT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다. 승객은 저 멀리 버스가 오는 게 보이면 그걸 타기 위해 무단횡단한다. 보다 보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선생님, 버스 한 번 타려다
영원히 못 타실 수도 있어요."

반응은 제각각이다. 죄송하다는 반응도 있고 “그러게요” 하면서 태연하게 받아 넘기기도 한다. 보통은 그냥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도대체 나는 어떤 반응을 원하는 걸까?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잘하는 걸까?






답을 찾지 못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저 멀리 정류장이 보이는데 기껏해야 한 살 남짓한 아이를 안고서 무단횡단을 해서 버스를 타는 젊은 아빠를 보았다. 홀몸도 아니고 심지어 아이를 안고서도 무단횡단하는 것을 보고 무척 화가 났다.


"선생님, 버스 한 번 타려다 영원히 못 타실 수도 있어요. 애도 있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


아무 말 없이 그는 나를 쓰윽 쳐다보더니 그냥 들어가서 앉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아이를 안고 무단횡단을 하는 아비에게서 아이가 무엇을 배우겠는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당연히 무단횡단을 하는 아버지를 볼 테고 그걸 따라 할 것이다.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 적어도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서 부모가 될 테고 똑같이 그 아이에게 무단횡단하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뭐라 말한다고 바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난 후로는 무단횡단을 하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뭐라고 지적질을 한단 말인가. 그저 아이를 불쌍하고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죄라면 부모를 잘못 만난 죄일 것이다. 물론 그 아이는 부모가 하는 것을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다. 적어도 그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를 포함한 모든 운전자 또한 내 차로 인해 사고가 나고 무고한 사람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4명이 보행 중 사망자라는 것은 작지 않은 비중이다. 생명은 소중하다. 부디 그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물론 더 큰 욕심은 나를 비롯한 무고한 운전자가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누명을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법은 언제나 약자 편이기 때문에 자동차보다는 사람, 즉 보행자를 보호한다. 최근에서야 무단횡단 사고에서 운전자의 과실이 없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애초에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당연한 일일수도 있지만 소중한 생명이 다치고 사라지는 일은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진정한 내 바람이다.



버스는 다음이 있지만, 인생은 다음이 없다.









차반 작가소개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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