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우리네 을의 이야기.

by 즐거운 사라

송곳이라는 웹툰을 초반부터 봤다. 노동자를 말하는 웹툰이라니, 흥분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송곳이라는 웹툰을 보지 않았다. 평소에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심심풀이로 웹툰을 보는데 송곳은 늦은 밤에 심심풀이로 볼만한 웹툰이 아니었다. 보고 나면 가슴이 요동치고 머리가 뜨거워져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공명정대한 맑은 정신일 때 보리라, 하고 밀어두었던 송곳이라는 웹툰. 여러 편을 몰아서 낮에 보곤 했다. 그리고 한참을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됐다.


화요일 새벽마다 뱀파이어의 싸움이나 자이언트 벌레들과 무력한 인간들 속 스릴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웹툰 목록을 내릴 때마다 흑백의 송곳 이미지를 외면하면서 자주 불편했다. 가슴이 요동치고 머리가 뜨거워지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본능을 외면하는 거 같고, 스스로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겁쟁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송곳은 대형할인점의 노동조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내용이다. 그곳에서 민주 시민과 우리 서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갑과 을.




근로 관련 법 강의를 하던 노무사가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나라는 ‘근로자’라고 말하고, 일본 등을 제외한 많은 나라가 ‘노동자’라고 표현한다고. 우리나라는 노동자라고 하면 빨갱이 소리부터 나와 부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리고 분명하게 ‘노동자’가 맞는 표현이라고 못 박았다.


근로자의 한자 뜻 그대로 말하자면 성실하게 노동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노동자라는 표현이 맞다. 근로자라 하면 왠지 강제로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느낌이다. 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공산주의에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대체 왜 노동 앞에 성실이 붙어야 하는가? 열심히 일해도 한 시간에 최저 5,580원 주면서 이름부터 성실하라고 붙여놓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근로하라 말만 안 했어도 성실하게 일하고 싶었는데, 일하기도 전에 근로하라니, 갑자기 성실히 일하고 싶지 않아진다.


아마 근로자라는 명칭이야 서둘러 바뀔 수 있지만,
우리에게 깊숙이 내재된 근면 성실 노동하기는 어찌해야 하나?"


친구 N은 야간근무부터 주말까지 반납하며 회사 일을 했지만, 그가 받는 월급은 130만 원 정도였다. 통상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야간수당도 없이 추가수당을 일률적으로 기재했다. 그때가 아마 최저임금 88만 원 수준이었을 때다.


N은 고된 일과 개인 여가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시간에 지쳤지만 아무런 의구심도, 변화 의지도 없었다. 그저 힘들다는 생떼만 부릴 뿐이었다.


나는 N에게 노예라고 놀리곤 했다. 그가 일을 많이 해서? 적은 월급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아니다. 정당하게 임금을 받으려는 의지도 없고, 일에 대한 비전이나 임금 인상에 대한 비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조리하고 이기적인 회사가 자신을 함부로 굴리는 것에 대해 어떠한 혐오감도 없었다. 회사는 근로 관련법부터 많은 법을 어기고 있었고, N은 그 모든 불법을 알고 있었지만 눈감았다. N은 갑의 횡포를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장기화되면서 갑의 횡포를 눈감아주며 결국 갑을 돕는 을이 된 것이다.


우리는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급여를 받지 못할 때가 있다. 야간수당 1.5배 혹은 최저임금까지도 지켜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뼛속까지 을이라 주는 대로 받으며 제대로 권리를 요구하지 못한다.

출근 시간보다 먼저 나오고, 퇴근 시간보다 늦게 끝난다고 더 많이 받는 게 아닌데 우리는 관행처럼 더 많이 일한다. 개인의 여가와 가정의 시간을 포기하고 삯도 없는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것이 미덕인 줄 안다.

고용에서 탈락한다는 불안함 속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적은 임금에 험한 일을 하면서 산재 등 여러 가지 안전장치도 없다. 그런데도 구조를 문제 삼거나 나라 탓하는 것은 빨갱이라 몰아가고, 개인의 탓만을 하며 개인이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니 자살률이 세계 1위 아닌가.


송곳은 법적으로 명시된 권리도 챙기지 못하는 우리네 을의 이야기다."


간혹 영세사업자 또한 을이라고 한다. 대개 그들도 경제적 을일 때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는 영세사업자보다 더 약하다. 철저하게 을인 노동자에게 소위 갑질해서는 안 된다. 세금 아깝고, 수수료 때문에 남는 게 없다면서 노동자 최저임금 몇백 원, 몇십 원 떼어먹는 건 무슨 심보인가.


얼마 전, 최저임금을 3년에 한 번씩 결정하자는 공방이 있었다. 현재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가 270만 명, 중소기업 98%가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데 매년 인상하면 중소기업 운영이 힘들고 결국 노동 고용이 위협받는다는 사용자 측 입장과 최저임금을 3년에 한 번씩 올린다면 물가를 고려해 대폭 올려야 하는데 그러면 중소기업, 영세기업들의 충격이 더 크다고 반박하는 노동자 측 입장이 맞섰다.


자본의 방향이 갑을을 만들 수밖에 없다 해도,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권리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자본이 커질수록 힘이 강해진다. 하지만 노동자는 연대를 이루지 않는 한 자본 앞에 강할 수 없다. 3년 뒤에 그동안의 물가를 모두 반영하여 기대만큼 대폭 인상이 타결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약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최소의 보장마저 줄어들게 한다면 더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가 아닐까.


송곳은 철저하게 을이고, 복종 정신이 깊숙이 박혀있는 노동자에게 살길만은 뚜렷하게 조명하며 걷자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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