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익빈 부익부’, ‘금수저와 흙수저’. 나는 때때로 빈익빈이고 흙수저로 가난하다. 하지만 가난하지 않다.
소위 흙수저라 부자의 삶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릴 적에 부모님은 자영업을 했고,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 월수입의 편차가 컸다. 많은 벌 때는 600만 원 이상 벌었고, 적을 때는 300만 원 이하로 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수입만 보면 우리는 가난하지 않고, 중상층 정도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상층의 삶은 멀었다.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느꼈다. 비싼 브랜드를 사거나, 근사한 가족 여행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진짜 우리 것이 없었다. 명의로 된 집도 없었고, 자동차, 자주 바뀌는 아빠의 오토바이,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기계 등 따져보면 할부를 갚기 전까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수입이 나쁘지 않아도 지출 대가리가 큰 탓에 풍족한 형편이 아니었을 거다.
나는 가난하게만 살았다. 정말이다. 나는 IMF 당시 매일매일 경제가, 가계가 힘들다고 들었다. IMF에서 벗어나자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들었다. 특별히 호황 사업이 아니었던 자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이혼 후 더 가난해졌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타격이었다. 운영되던 사업체는 문을 닫고, 값비싼 물건들은 모두 똥값이 됐다. 모든 것을 처분하기도 힘들었고 처분해도 손해만 볼 뿐이었다.
아빠는 실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잠정적으로 실업 상태를 전전하다가 한참 뒤에야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그 중간에 엄마도 일하지 못했다. 또 아빠는 새롭게 일을 하겠다더니 사기를 당했고, 엄마는 여전히 일하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최대의 가난을 겪었다.
하지만 가장 극심한 가난에 나는 가장 낙관했다.”
할머니 댁에 얹혀 지내다가 셋(엄마, 언니, 나)이서 작은 원룸에 들어가 지냈다. 한참을 사용하지 않은 집이라 매우 추웠고, 마침 겨울이었다. 당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이어서 원룸임에도 불구하고 폭탄난방비를 걱정해 자주 보일러를 돌리지도 못했다. 히터, 난로, 전기장판 등을 이용하는 게 훨씬 적은 비용을 발생할 수 있었다.
석 달 정도 좁고 추운 원룸에서 견디다가 단기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사 간 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이었다. 집 걱정을 유보할 수 있었다.
원룸에 살기 전에, 엄마의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인생 최악의 가난 앞에 있었다. 수술을 못 하는 거다. 그런 비관적인 상황에서 엄마는 언제나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들려온 소식은 S 재단에서 수술비를 지원한다고 했다. 엄마는 성공적으로 수술받았다.
사실 엄마는 여태까지 너무 많은 수술을 했다. 그런 몸으로 현재 엄마는 집안일, 자택 업무, 봉사, 온라인 학사과정까지 하고 있다.
16살 무렵, 나는 무작정 검정고시 학원을 등록했는데 한 달 학원비는 25만 원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50만 원으로 한 달을 지내야 했다. 그런데 엄마는 별말 없이 생활비의 절반을 학원비로 내줬다. 그 이후로 무료로 학원 다닐 방법을 찾아봤다. 결론적으로 한 번 낸 25만 원으로 학원에 계속 다녔다.
그때는 나도, 엄마도 세속적인 겁이 없었다. 우리의 한계를 계산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지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뿐만 아니라 20만 원 용돈으로 여름휴가 및 2달을 친구네에서 놀고 지내면서(사연은 없다. 그냥 노는 시간이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필요한 건 필요한 때 채워졌기 때문이다. 돈이 마르지 않는 지갑은 마치 오병이어 같았다.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 생선으로 5천 명을 배부르게 했던 예수의 기적에 비교할 순 없겠지만, 난 그 시절 배고프지 않았다.
필요를 넘은 경험의 일례로, 노트북이 갖고 싶어서 노트북 행사용 팸플릿 사진을 벽에 걸어뒀었다. 이후 내가 산 첫 번째 노트북은 그 팸플릿 속 노트북이었다는 것을 여러 해가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였던 책, 시크릿(개인적으로 안 좋아한다)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고 마이너스(-)만 있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가난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필요한 때에 채워졌다. 그리고 원하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은 하나씩 채워졌다.
아직도 나는 가난하고, 더 심한 가난의 때를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부유한 부모를 가진 자, 돈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경험하는 자들을 시기한 적 없다. 부유하지 않은 부모님을 바꾸고 싶은 적도, 누군가 누리는 풍요가 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왜냐하면, 난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얻으며 감사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을 주신다. 그래서 난 항상 식전에 기도한다.
언제나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