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0년 전 그리고 지금(2016년).

10년 주기로 나를 돌아본다.

by 즐거운 사라

지난 오늘의 첫인사는 “잘 잤어요?”였다. 잘 잤냐는 첫인사라니 낭만적이다. 물론 침실에서 들은 건 달콤한 인사는 아니고, 젊은 남자 의사에게 들은 인사였다. 별거 아닌 인사를 감상하는 거 보면 나는 참 잘살고 있다.


이번 년에 두 번이나 질병으로 입원,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차 사고로 폐차와 함께 한동안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고, 어처구니없는 연유로 실직했고, 현재 거의 돈벌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잘살고 있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가.
사고당했을 때? 배신당했을 때? 상주로 서야 했을 때?
힘들었을 때는 많았다.”


지금부터 20년 전은 “나를 처음으로 알았던 때”로 정신적인 나를 느꼈다. 그리고 나를 인지하는 건 고독한 번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0년 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너무 나쁜 일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기대어 쉴만한 내 편도 없었다.


그리고 20년, 10년이 흐른 올해도 고독한 번민을 깨닫는다.


우선, 몸이 힘들다. 2년 전부터 몸이 망가졌고 회복하기 힘들었다. 그냥 조금 나아질 뿐이었다. 그러다 차 사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몸을 더 망가뜨린 모양이다. 그러니 한 해 동안 두 번이나 입원을 한 게 아닌가.


더 흘러간 시간을 더듬어 보면 3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무리가 많이 왔다. 5년 전에는 1년가량 술에 빠져 지내면서 몸을 망가뜨렸다. 십 년 전을 더듬어보면 더 가관이다. 모든 것이 축적돼 이 지경이 됐다. 연약하고 아픈 게 내 자리인 양 지난 10년을 지냈다.


아니다. 나는 평생 요지경이다.


나는 신경쇠약에 선병질적이다. 장기기증 신청해 놨지만, 과연 장기가 쓸모 있을지 의문이다. 좌우심실관에 바늘만 한 구멍이 있고, 40.5도 고열로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신장의 문제라는 소견과 우신장은 갈비뼈에 보호받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앉아 있다. 얼마 전 원인 모를 간수치의 증가로 간마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차고, 그래서 위장이 선천적으로 약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부정출혈이 생긴다.


툭하면 얼굴과 몸이 붓고, 방광마저 취약하다. 작은 일에도 잘 놀라고 매일 몸에 멍이 생긴다. 술 해독도 거의 못해 오랜 시간 숙취에 시달린다. 위장병은 감기처럼 흔하게 생기고, 추위에 쉽게 면역력이 떨어진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이명, 두통, 어지럼증으로 일상이 힘들 정도다. 내 몸은 장기기증보다 연구용 신체기증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픈 것. 신경쇠약인 것. 그게 내 모습이다.”


워낙 약한 몸과 예민함을 타고났고, 애지중지 조심조심해야 할 몸을 함부로 굴리기도 했다. 이번에 만난 10년 주기의 깨달음은 “연약하고 예민한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다. 물론 여태까지 그걸 몰랐던 건 아니다. 알지만 항상 무리했다. 남들만큼 하는 것도 나에게는 무리인데 때때로 그보다 더 무리했다.


짧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난 아픔투성이다. 아픈 게 내 모습인가 보다.


같은 날 우연히 두 사람과 따로 한 대화에서 “얼마나 더 살 것 같냐”는 질문을 두 번 받았다. 나는 “10년에서 15년 정도에서 한계를 느낄 것 같다”고 답했다.


자살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물론 몸과 마음은 유기적이다). 육체의 한계점을 그때는 느낄 것 같다. 9년 전, 침 선생님은 내 육체의 나이가 40대 후반은 넘으며 건강한 40대 후반의 몸 상태도 아니라고 말했다. 덧붙여 관리를 안 한다면 유지는커녕 빠른 속도로 늙어갈 것이라고 했다. 현재 최소한 50대 후반의 몸이라고 가정하면 10~15년 뒤에는 육체의 한계를 느낄 만하다.


한계?”


12살 때 자살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자살해야 덜 두려울지가 관건이었다. 약으로 자살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였는데,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니 내가 선택한 죽음인데도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게 싫었다. 삶도 죽음도 편안할 수 없다는 게 번민하나, 둘 다 고통이라면 조금 더 삶을 살기로 했다. ‘죽기 좋을 때’가 있을 거라고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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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건강, 사회생활, 회자정리 등 아무리 악재가 겹쳐도 십 년 전만큼 힘들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십 년 전에 힘들었던 이유는 많지만 그 전부터 내가 병든 상태였기에 가장 최악의 해가 완성됐던 것 아닐까.


감기 바이러스처럼, 12살 때 ‘자살 결심’을 겪어봐서인지, 십 년 전에 나는 죽지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올해는 운이 나빴던 거지 (과거에 비하면)고통의 정점은 아니었다.


20년 전, 나는 상실감, 두려움, 고통을 느낀다고 자각했을 때 인생은 번민의 연속이라고 예고했던 것 같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느낀 것과 같다.


올해도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또 한계의 선을 넘나들며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예민하고, 선병질적인 내 모습을 가리고, 숨기지 않기로 한다. 비록 그 모습이 ‘한계’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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