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므로 이별했다.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습니다.

by 즐거운 사라

이별했다. 처음 겪은 이별도 아니고, 앞으로도 이별할 일은 많을 것이다. 이별할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 ‘역시 괜찮은 이별은 없어.’ 지금도 그렇다. 이별 후 흔한 증상을 겪는다. 술이 마시고 싶다. 울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털어놓고 싶다. 기억을 더듬어 상상 속에서 이별을 되돌려 본다. 측은하리만큼 외롭다.


나는 왜 이별을 택한 걸까? 왜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을까?


연인 관계가 반드시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고백 한 번 없이 꽤 긴 시간을 연인으로 지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믿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동반자로서 모든 책임과 애정을 쏟을 것을 약속했었다.


어느 날,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고 떠오르는 것은 함께하는 모습이나 가정을 이룬 미래나 그 사람의 얼굴이나 둘만의 따뜻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것이 떠올랐다. 분명한 이미지, 분명히 다른 사람, 분명히 일정한 사람.


분명히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말이다. 애석한 일이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는 꼴이 정말 애석하고 우매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애정을 기반으로 그 사람과 연인이며, 삶의 동반자이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 감정도 이성으로 통제될 수 있다. 나는 이미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책임지기로 한 상태였다.


그만큼 우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함께 성장통을 겪으며 관계가 깊어졌기에 뜨거운 사랑 없이도 함께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사랑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너무 달라서 이별했다.


원래 너무 다른 존재였다. 다르지만 서로 잘 맞는 부분도 있었다. 서로 아끼고 격려하며 지내면 괜찮았다. 그런데 다른 게 너무 컸다. 그동안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지냈던 거다. 서로 다른 존재라고 인정하고 헤어지는 것과 다른 개념의 인정이었다.


나는 생선조림을 좋아하고, 그는 생선구이를 좋아했다. 결국, 생선 요리를 같이 먹지 않았다.
나는 과일을 좋아하고, 그는 안 좋아했다. 결국, 나만 먹었다.
그래도 우리는 커피를 좋아했다. 같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좋았다.
우리는 취향이 아주 달랐지만, 내가 드라마를 볼 때 그 시간을 존중받았고
나는 그가 게임을 하는 시간을 존중했다.


사소한 ‘다름’은 존중할 줄 알았다. 하지만 큰 것은 달랐다. 함께하려면 반드시 합의돼야 하는 주제들 비단, 가족에 대한 생각, 자아실현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삶의 방향. 존재 가치를 좌우하는 영역은 너무 달라서 합의가 안 됐다. 누군가가 굴복당해서 삶을 희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길은 단 하나였다. 바로 헤어지는 길이었다. 그래야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가능했다.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고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되고, 다른 가치관을 비난하며 상처 주지 않아도 되는 길. ‘다르므로 헤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외로운 마음을 달래보아도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다르다는 진실이다.


함께할 때 애정은 기반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관계의 존속 여부는 사랑이 아니라 존중으로 결정한다. 존중받지 못해서 헤어지거나, 혹은 존중하기 위해 헤어진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길이다. 그렇게 함께 걸어가거나, 그가 걷는 뒷모습을 인정하고 그의 길을 존중하고 멈춰서 안녕을 바라는 것. 나의 연애는 후자를 선택하면서 종결했다.



PS. 괜찮은 이별은 없다. 시원섭섭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슴에 무언가 새겨진 것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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