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취하고 채우고
밤마다 혼자 술을 마신다. 보통 500ml 맥주 한두 캔을 마시며 형편이 되는 대로 안주를 집어 먹는다. 어느 날은 과일을 먹고, 어느 날은 잔뜩 사온 편의점 음식들을 펼쳐놓고, 어느 날은 과자 한 봉지, 아니면 그냥 맥주만 마신다.
운이 좋은 날은 누군가와 소주병을 기울이면서 안주를 음미한다. 나는 소주 반병쯤 먹으면 취한다. 맥주 한 캔 마셔도 취한다. 그래도 소주 첫잔이 달달한 날은, 소주 마시며 분위기 샤워하는 날은 한 병 넘게도 마신다. 술은 취하는 거니까, 취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술도 취한다.
혼자 마실 땐 소주가 써서 보통 맥주다. 맥주도 많이 마시는 날은 3병정도 마신다. 그런 날은 취하기를 넘어서 쓰러지며 잠이 든다.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아니다. 그럼 소주를 좋아하느냐고? 그것도 아니다. 나는 깊은 향 가득한 스카치위스키가 좋다. 가끔 속을 불태우고 싶은 날은 데킬라가 끌리고, 혼자 밖에서 돈들이며 사색하고 싶은 날은 코스모폴리탄(칵테일)을 마신다. 그런데 좋아하는 양주 종류는 비싸고, 또 한두 잔이면 훅 취해버리니까 자주 마시지도 못한다. 이제 집에서 혼자 마시는 맥주도 사치인 처치다. 계속 술을 마시려면 플라스틱병에 담긴 담금용 소주를 사놓고 눈금 칠하고 나눠 마셔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술을 못한다. 정확히,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몸이다. 알코올에 의존했던 전력도 있다. 술 때문에 몸이 많이 망가졌었고, 일상도 무너졌었다. 태생이 술을 못 먹는 몸인데 과하게도 들이 부었었다.
그런데 어떻게 술을 이겨내며 마시느냐? 바로 폭식이다. 간이나 신장의 적신호를 일반적으로는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위장은 다르다. 술이 들어가면 바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폭식으로 보호한다. 위장의 보호와 흡수되는 알코올의 농도도 줄이는 방법이고,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덜하다.
몸이 겨우 견뎌내기 위해서 술과 폭식을 함께한다. 깡주를 마시는 날은 다 마시고나서 새벽에 밥을 찾는다. 그것도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는다. 다음날 느낄 고통을 줄이기 위해 폭식으로 몸을 망가뜨린다. 사실 술을 끊고, 식습관을 개선하기 위해 매우 노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마음이 허해서 술을 마시고, 폭식을 한다. 생각처럼 술과 음식을 절제하지 못한다. 내 마음에서 채워지지 못한 ‘어떤 욕구’를 술과 폭식으로 채우는 거다. 물론 일시적인 방편이고, 술과 음식이 진짜 마음의 욕구를 해소해주지 않는다.
다만, 자기 전에 증폭되는 비참한 기분을 덜하게 해준다. 원래 알코올은 진정제가 아닌가. 몸뿐만 아니라 정서의 섬세한 결도 무디게 해준다. 어떤 느낌도 둔하게, 아득하게 만드는 거다.
돈 쓰고, 몸 상하고, 미모도 상하고, 정신적으로도 의존할 수 있으니 해악이 맞다. 해악인 줄 안다. 폭식과 술담배에 쩔어서 잠든 다음 날, 내 방안에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 불쌍한 냄새다. 불쌍한 냄새라니 그게 가장 차단해야 할 해악이다.
요즘은 근사하게 혼술, 혼밥을 포장할 수 있는 세상이고, 실제로 미디어에서 좋은 포장을 해주기도 했다. 근데 난 근사한 혼술혼밥을 즐기지 못한다. 내 방에 불쌍한 냄새가 나는 한, 즐길 수 없는 거다.
나중에 마음이 채워진 후에는 가끔 즐길 수 있겠다. 근사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취하고 채우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을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도 아직 채워지지 않는 밤은 언제 채워질까? 나중에 채워지겠지. 오늘은 말고, 혹은 내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