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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Dec 26. 2023

나의 선생님께

네번째, 수신인 없는 편지

선생님을 다시 뵙는다면 '안녕하세요', 라는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날 것만 같아요. 그 시절의 저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만 같은 유리 막대 위에 발을 올려놓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때 제 손을 잡고 저를 평평한 땅으로 내려오도록 인도해 주신 분이 선생님이셨어요.


부끄러운 일화입니다. 사춘기를 맞은 중학생 아이가 으레 그렇듯, 저도 선생님께 참 까칠한 아이였지요. 쌍꺼풀 테이프를 떼고 비비크림과 틴트를 지우라고 하셨을 때 입을 삐죽거렸던 기억, 학교에 자주 지각하고 수업 시간에 떠들다 남아서 한자 명언 쓰기 벌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어른이 된 후에 돌이켜 보니, 당신이 저 같은 사고뭉치 학생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겠구나 싶어요.


저요, 단춧구멍처럼 세로로는 작고, 옆으로는 쭉 찢어진 눈이 컴플렉스였어요. 샛노란 피부도 싫었구요. 그런데 제가 왜 화장을 지우고 선크림만 바르고 다니게 되었는지 아세요? 선생님께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예쁜 아이라고 아주 여러 번 말씀해 주셨거든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학교 강당에서 열리는 작가님 초청 강연을 꼭 들으러 오라며 저를 챙겨 주신 기억도 있어요. 또, 제가 쓴 시며 독후감을 보물처럼 대해 주셨잖아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머리카락을 단발로 잘랐을 때는 단정한 게 참 곱다고 말씀해주시고, 빨간 니트를 입으면 그 니트가 잘 어울린다며 저에게 크고 작은 관심을 쏟아 주셨던 게 참 감사했어요.


꽃에도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며 키우면 잘 자라나잖아요. 덕분에 저는 사춘기가 끝날 무렵, 공부에도 흥미를 붙이고 꿈과 관련된 멋진 활동들을 하며, 건강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나갔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반에서 '가장 성공할 것 같은 사람' 인기 투표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같은 멋진 어른을 만나 제가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 저는 가끔 십여 년 전 국어 시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시를 읽고, 선생님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령을 맞추는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경합니다. 다시 뵙는다면 열다섯의 제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노라고,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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