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수신인 없는 편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당연하게도 나는 당신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작은 도시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일류 소설가인 당신과 악수 나눌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수도요.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작품을 얼마나 여러 번 읽고, 책 속의 음악을 찾아 들으며, 그리고 제목까지 기억하는지를 삶의 자랑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내가 읽은 당신의 책들을 말해 드릴까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노르웨이의 숲] [1Q84] [해변의 카프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여자 없는 남자들] [애프터 다크]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반딧불이] [일인칭 단수] [기사단장 죽이기] [고양이를 버리다]
어때요, 이 정도면 독자라고 이름 붙일 만한가요. 하루키네 유리컵엔 하나쯤 제 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70대의 당신은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한다죠. 당신 같은 소설가의 팬이란 사실이 내 삶을 아주 멋드러지게 만들어줍니다. 나는 그 멋진 책들 뒤에 숨어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의미를 해체하고 싶다가도. 당신이 이런 걸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해요.
당신의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걸 눈으로 뇌로 핥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딸기 케이크 맛이 나나요, 아님 바나나 스무디 맛이 날까요.
그럼 당신이 독자들에게 바라는 건 뭘까요?
있죠, 삶이 너무 힘들어서 당신 책에 대고 곡소리를 했더니 그런 대답이 돌아오는 거예요.
"재즈나 들어. 쿨하게 사랑이나 하라고."
물론 당신이 말하는 '쿨한 사랑'이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가지는, 그런 사랑이 아니란 걸 알아요. 사랑할 때 쿨하게, 이별할 때도 쿨하게 뒤돌아서란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아무튼, 이 편지의 마무리는 오래오래 건강하시란 말로 끝내고 싶어요. 당신의 소설 속 세계, 하루키 월드를 지켜본 경험은 진심으로 흥미로웠거든요. 이 쿨한 세계의, 오랜 독자이고 싶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원한 당신의 독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