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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an 02. 2024

고슴도치들에게

여섯 번째, 수신인 없는 편지

가시 돋힌 말로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고슴도치들.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너희 고슴도치들에게 편지를 쓰는 건 내게 있어 괴로운 일이었어. 사는 동안 만나온 고슴도치를 떠올리자면, 가시에 찔린 상처가 아직도 욱신거리는 것 같았거든.


사실 첫번째 고슴도치를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이게 고슴도치인지 귀여운 햄스터인지조차 몰랐어. 그러다 숨겨져 있던 큰 가시들에 찔려, 펑펑 울고 나서야 알았지.


"아, 저게 바로 '고슴도치'구나."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고슴도치를 만났어. 누군가를 헐뜯는 고슴도치. 뾰족한 말을 내뱉는 고슴도치들. 그런데 신기한 게 뭔지 알아?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리면 찔릴수록, 내 피부 표면에도 굳은살이 생겼어. 나중 작은 가시쯤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어. 고슴도치가 진짜 햄스터처럼, 별거 아니어 보이더라.


살다 보면 사자 무리에 포위된 것 같은 위기도 있고, 드래곤 같은 직장 상사도 있더라고.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슴도치가 무섭지 않아. 그러니까 너희 고슴도치들도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편이 좋을 거야. 하하.


어쩌면 내게도 고슴도치의 모습이 있었겠지.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어. 하지만 고슴도치와 선한 사람들의 차이점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봐 조심하고 또 상처를 줬다면 사과한다는 데에 있지 않겠니. 나는 고슴도치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p.s. 그리고, 혹시나 고슴도치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


"그건 단지 가시를 세운 작은 고슴도치일 뿐이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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