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서른의 엄마에게
일곱 번째, 수신인 없는 편지
나는 어릴 적부터 예민한 아이였어. 편식도 심하고 입이 짧아서 잘 먹지 못했대. 다섯 살 때에는 밤잠을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대성 통곡을 했다고 해. 배가 많이 고팠나 봐. 손에 요구르트를 쥐어 주면 그걸 마시지도 않고 꼭 쥔 채로 잠에 들었다지. 그때 엄마 나이가 딱, 서른 즈음이었을 거야.
그리고 일곱 살 때에는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엄마가 사용하지 않는 방의 흰 벽을 내어 줬잖아. 그 벽지에다 마음껏 그림을 붙이고, 그리고, 스티커를 붙여 꾸며 보라고. 그래서 그 벽은 온통 색연필과 크레파스 자국으로 지저분했는데, 내 마음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했던 놀이들은 이제 머릿속에서 거의 잊혀졌어. 엄마와 함께 그렸던 콩순이 그림도, 잠들기 전 읽어 주었던 영어 동화책도, 비 오는 날 웅덩이에 종이배를 띄우는 놀이도. 엄마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어. 모두 엄마의 기억에는 남아 있는 것들인데, 나 혼자 그걸 잊어버려서 미안해.
쓰다 보니, 나 엄마에게 많이 사랑받았구나 싶어서 눈물이 나. 살다 보니 그 사랑을 잊어버린 것 있지.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엄마의 사랑을 잔소리로 치부하고 말았어.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의, 서른의 엄마에게 닿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엄마, 세상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던 '나'라는 아이를 특별하게 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 이십 년 간 엄마의 작은딸이 본의 아니게 속을 많이 썩이겠지만, 엄마가 믿어 준다면 잘 해낼 거야, 그게 뭐든. 엄마가 준 사랑이 비료가 되어 멋진 결실을 맺을 때까지 지켜봐 줘."
많이 많이 사랑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