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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Feb 02. 2024

독자에게

수신인 없는 편지, 그 열한 번째 이야기 

독자 (讀者) - 책, 신문, 잡지 따위의 글을 읽는 사람.


당신은 김씨 성을 가진 독자일 수도 있고, 황씨 성을 가진 독자일 수도 있겠지.


분명한 건 당신이 어떤 이름을 가진 독자라 해도 내가 당신을 애정할 거란 사실이야.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글쓰기를 사랑했어. 중학생 때 이야기인데, 그때의 내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거였어.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 오발탄이라는 시나리오 모음 사이트가 있었는데, 그 사이트에 올라온 영화 대본을 읽으며 시나리오 용어나 작법을 공부하고 시나리오를 여러 편 완성해보기도 했어.


그 시절의 꿈은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워. 결국엔 취미 수준에 그친 목표였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별세계를 모험하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었거든. 그때 공부했던 글쓰기에 대한 지식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 자기소개서나 지원서를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있지, 그 시절에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친구나 가족에게도 보여주기 쑥스러워서, 거의 혼자서 쓰기만 했어. 그런데 이젠 독자라는 존재가 생겼잖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말이야.


먼저,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또, 오늘 아침으로는 무얼 먹었냐고도 묻고 싶어. 당신도 알겠지만,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


나는 흰 우유와 함께 꿀을 뿌린 프렌치 토스트를 먹었어. 당신은 매번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데, 당신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서 이것저것 묻고 싶어.


그런 상상을 해, 독자들 한 명 한 명을 초대하는. 상상 속의 우리 집은 볕이 잘 드는 통나무 집인데, 당신이 문을 두드리면 나는 사과 파이를 굽다가 부리나케 매무새를 정리하는 거야. 함박미소 지으며 문을 열면, 당신은 우리 집의 아늑함과 따뜻함에 놀라게 될 거야.


당신이 흰색 테이블에 앉으면, 나는 갓 구워낸 사과 파이와 다즐링 홍차를 준비해 테이블 중간에 놓아 두고 한 입 먹도록 권하겠지. 당신은 바삭한 페스츄리 식감과 달콤한 사과 잼의 조합에 눈이 동그래질 테지.


그렇게 당신을 대접하고 싶어. 비록 상상 속의 만남이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아?




나의 독자가 되어 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당신도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뜻이야.


추신. 독자의 애칭은 사과 파이가 어떨까? 나의 사과 파이. 웃으라고 한 농담이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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