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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Mar 13. 2024

나의 첫 직장에게

수신인 없는 편지, 그 열 두 번째 이야기

첫 직장을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면,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나.


나의 첫 직장은 참 독특했어. '시간 여행'을 주제로 만든 사진관. 인테리어에 원목이 많이 쓰여서인지, 그곳에서는 쿰쿰하고 먹먹하면서도 코가 아리도록 달큰한 나무 냄새가 났어. 어쩌면 옷걸이 가득 모았던 빈티지 의류에서 나는 향이었는지도 몰라.


있지, 그곳엔 나를 별명으로 부르는 사장님이 있었어. 사장님이 자주 쓰는 단어는 '금일'과 '명일'. 금일과 명일은 각각 한자로 오늘과 내일을 뜻해. 사장님이 금일 명일을 그렇게 많이 쓰셨던 건, 그만큼 현재와 미래가 소중하기 때문이었던 걸까? 라고 아무도 웃지 않을 만한 농담을 속으로 삼켜.




얼마 전에 성격 테스트를 하나 했는데, 나는 '성취'에 대한 욕구가 높은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어.


이 결과를 듣고 지난 업무들을 돌이켜보니, 나 카메라를 잡고 피사체를 촬영할 때 한번도 진심으로 환하게 웃은 기억이 없더라. 항상 긴장하고 있었어. 왜냐하면 사진이 잘 나와야 하니까. 결과, 그러니까 '성취'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소중한 법인데, 수 년 동안 일을 해오면서 항상 실수할까 봐 속으로 인상을 팍 쓰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일이 즐거우면서도 괴로웠어.


첫 직장에서 아쉬웠던 점은 그거야, 내가 많이 웃지 않은 것.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조금은 가볍게 넘길 수 있을 만한 일들이 많았더라고.


앞으로는, 일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




그동안 첫 직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어. 그런데 모든 말이 걸러지고 나니, 남은 이야기는 이거야.


"나의 첫 직장이 되어줘서 고마웠어."


나의 첫 직장,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풍겼던 쿰쿰하고 먹먹하고 달큰한 나무 냄새.


그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스물다섯에 대한 그리움의 향기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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