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와 나는 '이 시간에 무슨 전화야' 하고 그 전화를 두 번이나 끊었다. 아, 알고 보니 그 전화는 앙코르와트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한 알람 전화였던 것이다. 전 날 저녁에 헤어지며 일출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던 사실을 우리 둘 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정신을 차리자 그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팀원이 찍어 온 사진을 보자,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보다 일출을 놓쳤다는 후회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캄보디아의 일출은 아름다웠다.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그렇게나 어이없게 놓쳐버린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앙코르와트에 가는 날이다.
캄보디아에 대한 내 개인적인 두려움의 원천이었던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에 가더라도 너무 무섭겠다 싶으면 그 계단에 오르지 않으리라며 계속 나 자신을 달래었다. 더운 날씨와 앙코르와트의 계단에 대비하여, 전 날 저녁에 마켓에서 구입한 코끼리 바지를 입었다. 크게 비침이 없으면서도 바람이 숭숭 통하는 것이, 캄보디아의 날씨에 아주 최적화되어 있었다. 역시 패션은 현지 패션이 최고다.
두려움을 안고 버스를 탔다. 에어컨의 서늘함이 긴장감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겠다) 막상 도착해서 앙코르와트를 본 첫 느낌은, 그 건물조차도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워져 있다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려쬐는 햇빛을 가릴 그늘막도 없었고, 날씨는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집중력은 갈수록 떨어졌고, 결국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앙코르와트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그저 구경하는 것이지만, 이런 날씨 속에서 이것을 세워야 했을 당시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들었다.
앙코르와트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엄마가 예전에 말했던 앙코르와트의 계단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우리가 올라가야 할 계단과 비슷한 구조를 볼 수 있었는데, '저기를 올라가야 한다고 하면 난 가지 않겠다'라고 계속 생각했다. 마침내, 우리가 올라가야 할 앙코르와트의 계단에 도착. 두근두근.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해볼 만했다. 엄마가 여행을 왔던 그때와는 달리, 계단 받침대와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사고가 잦아서 이런 설치들이 점차 추가되었다고 하니 역시 무서운 곳이었나 보다. 그만큼 당시에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신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었으리라. 손잡이를 붙잡고 받침대를 밟아 가며 열심히 올라갔고, 앙코르와트 전체 풍경을 감상했고, 다시 잘 내려왔다. 그렇게 나의 두려움 극복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앙코르와트를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니, 우리는 더위에 많이 지쳐 있었다.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캄보디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기저귀만 입고 다니는 아기, 그런 아기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엄마와 할머니, 코끼리 바지를 판매하는 사람, 캄보디아의 정경을 그리는 예술가... 우리 삶과 다른 듯 꼭 닮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그 찬란한 앙코르와트의 풍경보다도 앙코르와트에서 내려와 만난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역시 큰 이벤트나 풍경도 좋지만 사실은 그 여행지에서의 사람들, 그들이 베푸는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그 여행이, 그 장소가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아름다운 앙코르와트.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
(좌) 나무 받침대와 손잡이가 잘 설치되어 있는 앙코르와트의 계단
(우) 이것은 앙코르와트를 둘러보며 마주친 계단인데, 아마 예전 앙코르와트의 계단이 이런 형태가 아니었나 싶다. 받침대와 손잡이가 없는 이런 형태의 계단은, 절대로 난 갈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