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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밤, 차 안에서

빗소리와 피아노와 라면과 엘레가든

by MITCH


가끔 그날 밤이 생각난다. 그에게 전화가 왔던 그날.


“드라이브할래?”


퇴근길, 지쳐 있던 몸이 순간 멈췄지만 대답은 곧장 나왔다.


“좋아.”


그때의 나는 늘 피곤했고, 그래서인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가 있는 곳까지 차를 몰고 왔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던 파란 차체, 그때 그 반짝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강을 따라 달리다 곧 정체에 걸렸고, 우리 둘은 느릿느릿 흐르는 도로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고, 바깥세상이 물감 번진 그림처럼 흐려졌다.


“비 오는 밤엔 이렇게 막히는 것도 괜찮네.”


잠시 후 도로가 뚫리자 우리는 동시에 차를 세우자고 했다. 뚝섬 근처, 강변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의자를 살짝 젖혔다. 비는 더 굵어졌고, 강 건너 불빛들이 창문 위에서 몽글몽글 피어났다. 갑자기 그가 빗속으로 뛰어 나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고 왔다. 컵라면이었다.


컵라면의 뚜껑을 열자 차 창문에 김이 서렸다. 앞유리가 뿌옇게 변했다. 그 창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고, 나는 그 옆에 웃고 있는 작은 얼굴을 그렸다. 그때 우리 둘이 웃던 소리, 라면에서 올라오던 따뜻한 냄새, 창밖에서 들리던 빗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창문을 살짝 열어 빗소리를 들었다. 차 안에서는 유리코 나카무라의 피아노가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그 음악과 빗소리를 들었다. 차 뒤쪽에서 화면을 잡았다면, 그 순간은 정말 영화 같았을 것이다.


앨범이 한 바퀴 다 돌 무렵, 그가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엘레가든 들어볼래?”


그가 웃었다. 곧 차 안 가득 청량한 락 사운드가 울렸다. 차 안이 단숨에 라이브 하우스가 된 것 같았다. 차가 많이 줄어든 도로 위를 달리며, 우리는 웃고, 노래하고, 소리쳤다.


집 앞에 도착해 그가 차를 돌려 떠나는 걸 지켜보다가, 괜히 신이 났다. 그날 이후로 비 오는 밤이 조금은 기다려지기도 했었다. 그날의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언젠가 또 그런 밤이 온다면, 나는 다시 차를 세워놓고 컵라면을 먹으며 창문에 낙서를 하고,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창밖을 바라볼 것이다. 그날처럼 음악을 틀고, 그날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다시 그 밤을, 다시 그 기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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